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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49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 금란패(禁亂牌)를 차고 법으로 금지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임시 관원.

개설

돈화문금란관(敦化門禁亂官)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수문장과 함께 지키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부정행위를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한 관리를 말한다. 궁궐 안에서 과거 시험이나 나례희와 같은 행사가 있을 경우 추가로 몇 명을 더 배치하여 주변의 감찰 업무를 수행하였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에는 세자 책봉 또는 세자·왕후·왕태후의 병환 쾌유와 같은 왕실의 경사가 있을 때나 중국 황제의 즉위 등을 계기로 특별 과거 시험인 정시(庭試)를 실시하였다. 정시는 궁궐 안마당에서 진행하였는데, 창덕궁에서 시험을 볼 때에는 과거 시험장을 통제하는 금란관을 추가로 편성하여 응시자의 복색이나 부정행위를 감찰하였다. 예를 들면 과거 응시자가 창덕궁 안의 시험장에서 답안을 쓰지 않고 몰래 가지고 나갔다가 주변의 도움을 얻어 답을 써 제출할 경우 이를 발각하고 해당 응시자를 체포하였다. 이때에는 과거 시험을 감독하는 녹명관(錄名官), 입문관(入門官)과 함께 부정행위자를 색출하였다. 만약 과거 시험이 끝난 후 부정행위가 밝혀질 경우에는 가장 먼저 금란관에게 죄를 물었다(『숙종실록』 38년 7월 3일). 돈화문금란관은 직속으로 서리와 나장 등의 하급 군사들을 부릴 수 있어서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하였다. 특히 돈화문금란관은 왕이 머무는 궁궐의 정문을 수문장 및 여러 나장과 함께 지켰기에 이들을 감찰하는 활동도 하였다. 돈화문뿐만 아니라 3문(門)이라 불리는 금호문(金虎門), 단봉문(丹鳳門)에도 금란관을 배치하였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