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지장(蠟紙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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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45 기준 최신판



책 표지나 궁궐용 벽지로 사용되는 능화지를 제작하던 장인.

개설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제작한 책의 표지나 궁궐이나 왕실 가구 내부의 벽지에 능화지(菱花紙)를 사용하였다. 납지장(蠟紙匠)은 밀납을 사용하여 책 표지나 벽지로 사용할 능화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상설 아문인 조지서 소속의 지장(紙匠)과 달리 실록청(實錄廳)이나 교정청 등 임시 도감의 지장으로 조선초기부터 한말까지 활동하였다.

담당 직무

납지장은 책 표지나 벽지 등에 사용되는 능화지를 만드는 일을 하였다. 능화지를 만들기 위해 목판 위에 새겨진 능화 무늬를 새긴 능화판(菱花板)이 준비가 되면 그 위에 종이를 올리고 밀납을 밀어 무늬를 베껴내는 것이다. 판화는 능화판에 닿는 면을 찍어내어 문양이 좌우가 바뀌는 데 반해, 납지는 밀납이 닿는 면을 탑본(榻本)처럼 베껴내어 문양이 그대로라는 점이 다르다. 능화지는 용도에 따라 책 표지용과 벽지용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종이와 두께를 달리하여 제작한다.

첫째, 책 표지용으로 사용되는 능화지는 종이의 두께가 두껍고 기름 먹인 종이를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책판(冊版)으로 사용하기 위해 문양을 찍어내고 그 위에 밀납을 칠해 방수 효과까지 의도하였다.

둘째, 벽지로 사용하는 능화지는 색상에 따라 백능화지(白菱花紙)와 청능화지(靑菱花紙)로 나뉜다. 백능화지는 능화판 위에 한지를 올리고 색이 없는 밀납으로 능화 무늬를 베껴내는 것이다. 청능화지는 쪽염으로 남색을 염색한 한지를 능화판 위에 올린 후 밀납으로 능화 무늬를 베껴내는 것이다.

변천

납지장의 존재는 조선초기의 기록이 유일하다. 1473년(성종 4) 『예종실록』을 인출한 실록청에 박복동(朴福同) 등 4명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정포 1필씩 지급하였다(『성종실록』 4년 6월 8일). 이후 납지장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조선후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이나 선원록(璿源錄)을 수정하는 교정청에 지장이 소속되어 그들이 책 표지를 제작하였다. 18세기 초에는 도감마다 2명∼3명을 동원하였으나, 18세기 후반에는 8명∼10명을 동원하였는데 그들 중 일부가 납지장이었다고 여겨진다. 한편 왕릉을 조성하는 산릉도감에서는 정자각 내부에 백능화지와 청능화지를 발랐던 기록이 계속 있어 지장 중 일부가 납지를 제작하는 장인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 장경희, 『의궤 속 조선의 장인』, 솔과학, 2013.
  • 장경희, 「조선 후기 산릉도감의 장인 연구」, 『역사민속학』 2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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