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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44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의술을 공부하며 간병하는 일을 맡아하던 의녀.

개설

간병의(看病醫)는 초학의 단계를 거친 의녀로서, 간병하는 일로 의원을 보조하면서 병에 대해 익혔다. 간병의 기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특정 분야의 의술을 빨리 익혀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 내의녀로 발탁되었고, 그러지 못하면 40세가 될 때까지 간병의로 남아야 했다. 40세가 지났는데도 전문 분야가 없으면 원래의 역(役)인 관아의 여종 신세로 돌아가야 했다. 간병의 중에서 성적이 뛰어난 사람을 매달 4명씩 뽑아 그들에게는 급료를 주었다.

담당 직무

간병의는 환자의 병을 살피고 간호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1478년(성종 9)에 예조에서 의녀권과조(醫女勸課條)에 대해 아뢴 내용에 의하면, “의녀를 3등으로 나누되, 첫째 내의(內醫)라 하여 2인을 두고 달마다 급료를 주며, 둘째 간병의라 하여 20인을 두고 전달에 강(講)한 점수[畫]가 많은 자 4인에게 급료를 주며, 셋째 초학의(初學醫)라 한다.”고 하며 의녀의 등급을 3단계로 구분하였다(『성종실록』 9년 2월 16일).

변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의 단행으로 조선의 보건 의료 제도를 개혁하였다. 새로운 의학 교육을 시작한 이후 간호부 양성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의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간병 의녀도 없어졌다.

참고문헌

  • 한희숙, 『팔방미인 조선 여의사 의녀』, 문학동네, 2012.
  • 박선미, 「조선시대 의녀교육연구―그 양성과 활동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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