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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38 기준 최신판



중국(中國) 명(明)나라 광종(光宗) 대에 사용한 연호(1620년).

개설

중국 명나라의 제 15대 황제인 광종이 사용한 연호이다(1620년).

광종은 연호인 태창(泰昌)을 본 따 태창제(泰昌帝) 혹은 태창 황제(泰昌皇帝)라고도 불리는데, 1620년 8월에 즉위하여 9월에 급사한 인물로, 중국 역대 황제 가운데 재위 기간이 가장 짧다. 광종은 황위에 오르면서 여러 개혁안을 발표하며,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워낙에 병약하였던 그는 즉위 한 달 만에 이가작(李可灼)이 선단이라며 바친 알약 2알을 먹고 급사하였다.

한편 원래 중국에서는 황제가 죽으면 새로운 황제가 이듬해부터 어떠한 연호를 사용할지 반포하고, 즉위한 해에는 이전 황제의 연호를 이어서 사용하였다. 그런데 광종이 황위에 오른 지 불과 한 달 만에 사망하고 바로 그의 아들 희종(熹宗)이 황위에 오르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1620년 한 해에만 두 명의 새 황제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면서 황제가 죽은 다음 해에 이루어지는 중국의 연호 개원에 혼란이 발생하였다. 즉 광종과 희종 모두가 1621년의 개원에 해당하면서, 일반적 기준을 따르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결국 명나라 조정은 1620년 7월까지는 신종의 연호였던 ‘만력(萬曆)’을 사용하고, 8월부터는 광종의 연호인 ‘태창’을 연호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621년부터 희종의 연호인 ‘천계(天啓)’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를 살펴보면 당시 조정에서 태창 연호의 사용부터 천계 연호의 사용까지 여러 번에 걸쳐 논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광해군일기』광해군12년(1620년) 11월 27일자 기사에서는 11월 28일부터 서울 아문에서 태창 연호를 사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 지방은 공문이 도착하는 날부터 태창 연호를 사용한 것으로 결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연대(年代)를 표기할 때 계속하여 태창 연호 대신 만력 연호를 사용하다가, 이듬해인 1621년부터는 바로 천계 연호를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명사(明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