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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7 판



승려들이 사용하는 밥그릇.

개설

발우(鉢盂)는 산스크리트어 ‘파트라(pātra)’의 한자어 음역 발다라(鉢多羅)에서 ‘발(鉢)’과 사발이라는 뜻의 한자 ‘우(盂)’가 합성된 명사이다. 발우를 가지고 밥을 비는 것을 탁발(托鉢)이라 하는데, 불교의 중요한 수행 의례 중 하나이다. 발우는 비구가 지녀야 하는 여섯 가지 물품[六物] 중 하나이며 보살이 갖춰야 하는 18종물(十八種物)의 하나로,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해줄 때 함께 주는 불법 전승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고대 인도의 승려들은 탁발 즉 수행자들에게 음식을 얻는 것이 수행의 일부였기 때문에 발우는 수행자가 반드시 휴대해야 하는 물건으로 간주되었다. 발우의 유래는 붓다의 전생과 현생에서의 깨달음과 교화를 기록한 경전인 『태자서응본기경(太子瑞應本起經)』에 나타나는데, "석존이 성도(成道) 이후 7일간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두 사람의 상주(商主)가 음식물을 올렸는데, 그때 석존은 과거의 여러 부처들이 그릇에 먹을 것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안 사천왕이 각각 알나산정(頞那山頂)의 돌 속에서 자연의 그릇을 얻어 석존에게 바치자 석존은 4개의 그릇을 왼손 위에 놓고 오른손을 그 위에 얹으니 신통력에 의해 하나의 그릇으로 변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편 승려들이 식사를 하는 것을 발우공양(鉢盂供養)이라고 한다. 공양이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몸과 입, 생각 등 세 가지 방법으로 공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승려들의 식사는 ‘밥을 통해 공양을 한다’는 의미로 발우공양이라 불렀다.

내용

승려들에게 있어서 발우는 단순한 밥그릇일 뿐만 아니라 승가의 일원이자 수행자로서의 삶, 법의 전승을 내포하는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인 밥그릇이라는 의미로 발우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종대에는 발우를 일반적인 밥그릇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기록이 있다(『현종실록』 11년 3월 8일). 승려의 밥그릇이라는 원래 의미에서 그 형태가 비슷한 밥그릇이라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 정조대 승정원 지평 강빈(姜儐)이 발우를 소매에 넣고 대궐에 들어와 징을 울렸다는 기록이 있는데(『정조실록』 18년 8월 29일), 밥그릇을 가지고 입시한다는 것은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는 수단이었음을 의미한다.

형태

발우의 모양이나 용량은 경전 기록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중국의 학승 법현이 자신의 인도 여행기를 쓴 『고승법현전(高僧法顯傳)』에 따르면 대체로 잡색(雜色)으로 광택이 있고 용량은 2두 정도라고 한다.

재질은 흙, 나무, 철, 돌, 은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승려들은 철과 흙으로 만든 발우를 쓰고 부처는 홀로 돌로 만든 발우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불가의 계율을 기록한 문헌들인 율장(律藏)에는 목발(木鉢)은 다른 종교의 기물이라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토발(土鉢) 또는 철발(鐵鉢)만을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인도에서 흙이나 철로 된 발우가 권장된 것은 탁발로 받은 음식물을 다시 한 번 끓여 식중독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탁발로 얻은 음식물을 사원으로 가져와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발우가 솥의 역할도 겸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중국 등에서는 기후 풍토상 구하기 쉬운 나무로 만든 발우를 주로 사용해 왔다. 조선시대에 성행한 발우는 나무로 만든 표면에 옻칠을 하여 만든 것이었다. 발우의 색은 공작새의 색깔, 가릉빈가의 색깔, 비둘기의 색깔 등 3색을 불에 쪼여낸다고 한다.

현재 인도나 남방 불교에서는 1개의 발우를 사용하며, 한국에서는 4개를 겹쳐서 보관하다가 펼쳐 놓고 쓴다. 크기에 따라 제일 큰 그릇은 밥그릇, 두 번째는 국그릇, 세 번째는 청수그릇이며, 가장 작은 그릇은 찬그릇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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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고승법현전(高僧法顯傳)』
  •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 『태자서응본기경(太子瑞應本起經)』
  • 『범망경(梵網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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