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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6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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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전 |
한글표제 | 전 |
한자표제 | 錢 |
상위어 | 양(兩) |
하위어 | 푼[分] |
관련어 | 상평통보(常平通寶) |
분야 | 경제/도량형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유현재 |
용도 | 도량형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전(錢)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5년 9월 16일 |
동전 10문(文)에 해당하는 단위.
개설
전(錢)은 동전의 개수를 이르는 단위로 동전 10개를 1전으로 규정하였다. 동전 1개를 1문, 10전의 동전을 1양(兩)으로 정하여 유통시켰다.
연원 및 변천
고대 중국에서 곡물이나 금속은 무게로 가치를 측정했다. 한(漢)나라 당시 수수[黍] 1,200립(粒)을 12수(銖)로 하고, 24수를 1양으로 환산하였다. 1전은 1양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중량이다(『세종실록』 5년 9월 16일). 이후 동전 형태의 화폐가 발행되면서 동전의 가치를 표기하기 위해 1양과 그 아래 단위인 ‘전’을 사용하여 세분하였다. 『속대전(續大典)』 중 국가에서 공인한 화폐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는 국폐조(國幣條)에서는 상평통보의 무게와 개수를 ‘양’과 ‘전’을 기준으로 표기하고 있다. 1678년(숙종 4)에 제작한 상평통보 1문의 무게는 2전 5푼(分)이고 10문은 1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형태
고려시대 이래 둥근 외형과 가운데 사각형의 구멍이 뚫린 동전을 지속적으로 발행해왔다. 조선시대에도 상평통보를 발행하여 널리 유통시켰는데 그 형태는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이에 관에서는 사용하는 동전의 가치를 개수로 표기하였고 가운데 위치한 구멍에 줄을 꿰어 동전의 개수를 일정하게 헤아릴 수 있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동전의 형태가 달랐기 때문에 무게도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았다. 동전의 가치를 표기하는 방식은 무게에 따른 표기 방법과 개수로 표기하는 방식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민간에 나타난 동전의 가치 표기 방식은 맥락에 따라 내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만기요람(萬機要覽)』
- 『속대전(續大典)』국폐조(國幣條)
- 『한서(漢書)』율력지(律曆志)
- 원유한, 『한국화폐사-고대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한국은행 발권국, 2006.
- 박흥수, 「이조척도표준(李朝尺度標準)에 관한 고찰」, 『도(道)와 인간과학 -이동식화갑기념논문집-』, 삼일당,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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