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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24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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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준명지보 |
한글표제 | 준명지보 |
한자표제 | 濬明之寶 |
상위어 | 국새(國璽), 보인(寶印) |
관련어 |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춘방(春坊) |
분야 | 교육·출판/출판/인장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성인근 |
용도 | 세자시강원 문서용 국새 |
재질 | 백옥(白玉)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준명지보(濬明之寶)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고종실록』 26년 7월 18일, 『고종실록』 26년 8월 5일, 『고종실록』 26년 10월 7일 |
세자시강원 관원의 교지 및 교서에 찍기 위해 제작한 국새.
개설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관원의 교지(敎旨) 및 교서(敎書)에 찍기 위해 1889년(고종 26) 제작한 국새이다. 세자시강원은 ‘춘방(春坊)’이라고도 하는데, 세자에게 유교 경전과 역사를 강의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세자의 사부(師傅)는 주로 영의정과 좌·우의정이 겸직하였으나, 강학(講學)은 주로 빈객(賓客) 이하의 보덕(輔德), 필선(弼善), 문학(文學), 사서(司書), 설서(說書) 등 10여 명의 관료들이 담당하였다.
세자시강원은 조선초기 서연(書筵)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1466년(세조 12)에 ‘세자시강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조선시대에 줄곧 유지되었다. 그러나 개화기를 전후하여 세자를 비롯한 세자시강원은 국왕을 위시한 왕실의 호칭 변경에 따라 몇 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조선에서는 ‘왕세자’를 ‘왕태자’로 고치고, 이듬해인 1896년(고종 33)에는 기존의 ‘왕세자시강원’을 ‘왕태자시강원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대한제국이 들어선 1897년(광무 1)에 다시 ‘황태자’와 ‘황태자시강원’으로 각각 격상하였다.
그러나 왕세자나 시강원의 명칭이 바뀌기 이전부터 고종은 이미 시강원의 관격(官格)을 격상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1889년(고종 26) 7월 18일 고종은 ‘춘방의 직책들은 본래 청렴하고 뛰어나 마땅히 우대하는 뜻을 보여야 할 것이다. 보덕 이하의 현직 관원과 새로 임명하는 사람에게 본원인 시강원에서 교서를 만들어 특별히 반포하는 것을 이제부터 정식으로 삼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고종실록』 26년 7월 18일). 한편 세자시강원의 규정 및 의례 등을 기록한 『이원조례(离院條例)』에서는 위 고종의 명과 함께, 춘방교지(春坊敎旨)에는 ‘준명지보’를 청하여 찍는 일을 정식으로 삼았음을 밝혔다.
연원 및 변천
1889년(고종 26) 8월 5일 고종은 ‘준명지보’를 비롯한 여러 국새의 신조(新造)를 명하였고(『고종실록』 26년 8월 5일), 약 3개월 후인 10월 7일, ‘세자시강원의 교서에는 ‘준명지보’를 청해 찍는 것을 규례로 정하라’는 고종의 명이 있었다(『고종실록』 26년 10월 7일). 이후 『승정원일기』에는 1889년(고종 26) 12월 1일 ‘설서 박기양(朴箕陽)에게 내리는 교서에 찍기 위해 '준명지보'를 내어주기를 청하는 시강원의 계(啓)’로부터 1894년(고종 31) 7월 14일 ‘보덕 이준용(李峻鎔)에게 내리는 교지에 찍을 준명지보를 내어주기를 청하는 시강원의 계’까지 모두 67건의 ‘준명지보’ 청출(請出)에 대한 계가 실려 있다.
당시 시강원 관원들은 종3품 보덕을 비롯하여, 필선(정4품), 문학(정5품), 사서(정6품), 설서(정7품) 등이 모두 ‘준명지보’가 찍힌 교지나 교서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준명지보’ 사용 이전 시강원 관원의 교지는 다른 왕명문서와 마찬가지로 4품 이상의 경우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사용하였고, 5품 이하는 ‘이조지인(吏曹之印)’을 찍었다. 이는 『경국대전』에서 문무관 4품 이상 고신식(告身式)에서는 ‘보(寶)’를 찍고, 5품 이하는 ‘인(印)’을 찍는다고 차등을 두고, 후자의 경우 문관은 이조에서, 무관은 병조에서 각각 ‘이조지인’과 ‘병조지인’을 찍는다는 규정에 근거하였다. 이로써 ‘준명지보’는 고종이 세자시강원의 관격을 격상하면서 제작한 국새로, 1889년 10월 7일부터 품계에 관계없이 모든 시강원 관원에 대한 교지 및 교서에 찍었던 국새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준명지보는 그간 소재를 알지 못하다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4년 4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선왕실과 대한제국에서 사용한 인장 9점을 한국 측에 정식 반환한 것 중에 포함되었다. 이들 인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해병대 장교가 덕수궁에서 불법으로 반출한 문화재로 그 후손이 보관해 오다가, 지난해 11월 샌디에이고에서 미국 국토안보부 수사국(HSI)에 의해 압수되었으며 불법 반출임이 밝혀짐에 따라 한국으로의 반환이 결정된 유물들이다.
형태
『보인부신총수』에는 백옥 재질로 귀뉴(龜鈕)가 얹혀 있으며, 인면에는 ‘준명지보’ 4자를 소전(小篆)으로 양각하였고, 넓이는 방(方) 3촌 2푼이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
- 성인근, 『고종 황제 비밀 국새』, 소와당, 2010.
- 성인근, 『한국인장사』, 다운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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