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곡(正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차이 없음)

2017년 12월 10일 (일) 00:20 기준 최신판



활쏘기를 할 때 사용하는 과녁의 정중앙.

개설

활쏘기 훈련이나 시험에서 과녁의 정중앙에 일정한 표시를 하여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한 과녁 속의 작은 표적이다. 과거에는 여기에 고니[鵠]를 그렸기에 과녁의 중심부에 네모난 가죽을 덧댄 것을 ‘곡(鵠)’이라고 하고, 과녁에 그냥 동물 그림을 그리면 ‘정(正)’이라고 불렀다. 정곡(正鵠)에는 원형의 붉은 점이나 호랑이, 곰, 사슴, 돼지 등의 머리를 그려 넣기도 하였다. 보통 큰 과녁 안에 작은 사각형이나 원형으로 표시하였다. 표적의 중심을 말하기도 하였는데, 과녁에 맞혔더라도 정곡 안에 맞혔는지 그 밖에 맞혔는지에 따라 점수를 달리하였다.

연원 및 변천

활쏘기용 표적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처음에는 고니를 그려 넣어 사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정곡의 크기나 형태·문양 혹은 그림을 바꿔 사용하였으며, 과녁의 중심을 말한다(『정조실록』 15년 4월 30일). 조선시대에 무관을 뽑는 무과 시험에서는 정곡의 형태와 크기를 법전에 규정된 대로 사용하였다. 무과 시험에서 첫 번째 시험인 원후(遠侯), 즉 철전(鐵箭)을 쏘는 시험에서 사용하는 과녁의 크기는 높이와 너비가 1장(丈) 8척(尺)이었다. 너비를 3등분해서 정중앙에 정곡을 표시하였는데, 사방 6척의 사각형 흰색 가죽을 덧대고 돼지 머리[豕頭]를 그렸다. 다음 시험 과목인 편전(片箭)과 철전에도 모두 크기는 다르지만 사각형의 정곡을 그려 사용하였다. 왕이 신하들과 함께 활을 쏘는 의례인 대사례(大射禮)에서는 정곡에 들어갈 동물 그림을 신분에 따라 각각 다르게 사용하였다. 왕은 웅후(熊侯)라고 해서 곰의 머리를, 종친 이하 문무관(文武官)은 미후(麋侯)라 하여 사슴의 머리, 일반적인 군사 훈련에서는 시후(豕侯)라 하여 돼지머리를 정곡 안에 그렸다(『영조실록』 19년 윤4월 7일).

형태

정곡의 형태는 과녁을 삼등분하여 그 한가운데에 사각형의 테를 그리고 그 안에 곰이나 사슴, 돼지 등의 머리를 그려 사용하였다. 혹은 아무 그림 없이 원형으로 붉은색 칠을 하여 과녁의 중심점을 삼기도 하였는데, 이를 홍심(紅心)이라 불렀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일반 한량들의 활쏘기에는 홍심과 『주역』의 괘(卦)를 응용한 그림을 정곡으로 삼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무과총요(武科總要)』
  • 『사변록(思辨錄)』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이중화, 『조선의 궁술』, 조선궁술연구회, 1929.
  • 임선빈·심승구 외, 『조선전기 무과 전시의 고증 연구』, 충남발전연구원, 1998.
  • 최형국, 「조선후기 기병의 마상무예 연구」,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