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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19 기준 최신판



해그림자 길이 측정 기구.

개설

해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지면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表]와 평면에 드리워진 해그림자의 길이를 재는 자[圭]를 아울러 가리키며, 동아시아에서 사용된 해그림자 길이 측정 장치를 이르는 말이다. 규표(圭表)는 조선 세종 때에 간의대(簡儀臺)를 세우면서 간의대의 주변에 함께 설치한 해그림자 길이 측정 기구이다.

연원 및 변천

규표는 낮 동안 변하는 해그림자의 방향을 측정하면 해시계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해그림자 길이가 매일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을 이용하여 1년의 길이(회귀년)를 측정하거나 절기를 결정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규표는 간단한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쓰임새가 많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널리 쓰여 왔다.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천문학 책인 『주비산경(周脾算經)』에서 주비(周脾)는 주(周)나라 때에 사용하던 해그림자 측정용 막대[脾]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해그림자를 측정하여 각종의 천문학적 계산을 수행하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조선에서는 세종대에 간의대를 건립하면서 그 주변에 규표를 설치한 예가 있다. 그러나 세종 당시에 만들어진 규표의 정확한 규모를 알려 주는 기록은 없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의 규표는 원나라의 예를 따랐다고 하였다(『세종실록』 19년 4월 15일). 따라서 조선에서 제작한 규표도 표(表)의 높이가 40척, 규의 길이가 128척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세종대의 규표가 원나라의 제도를 따랐다면, 규 앞에 영부(影符)라는 장치도 부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세종대에는 이보다 규모가 작은 소규표(小圭表)도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규모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소규표는 높이가 8척인 규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형태

고대 중국에서는 보통 막대의 높이가 8척인 표를 사용하였으나, 표의 높이가 높을수록 그림자 길이의 측정이 쉽고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표를 더 높이 설치하게 되었다. 가장 획기적인 것은 원나라 때에 수시력(授時曆)을 개발할 때에 설치한 것으로, 표의 높이가 40척, 규의 길이가 128척이나 되었다. 높은 표의 경우 그림자의 윤곽이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기둥의 끝에 가로막대를 설치하거나, 대를 높이 쌓아 올려 원하는 높이에서 가로로 놓인 막대의 그림자가 지면으로 드리워지게 하였다. 표의 높이가 높을수록 규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윤곽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측정오차는 커지게 된다. 따라서 원나라에서는 빛의 회절을 이용하여 표가 드리우는 그림자의 윤곽을 선명하게 해주는 영부라는 장치를 규 앞에 부착하였다. 나아가 규로 그림자의 길이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규의 면이 지평면과 일치해야 하므로, 규의 주변에 수평을 확인할 수로(水路)를 설치하였다. 원나라에서는 이와 같이 영부를 부착한 높이 40척의 규표를 이용하여 회귀년의 길이를 측정하였고, 이것을 수시력에 반영하여 정밀한 역법을 만들 수 있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해그림자의 측정은 유교 이념에서 볼 때 백성에게 위정자의 의무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규표를 설치한 것은 왕의 위엄과 후덕함을 보여 주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나일성 등, 『세종조 과학기구 규표 복원제작 연구보고서』, 세종대왕유적관리소, 1995.
  • 이용삼 등, 「조선의 세종 시대 규표(圭表)의 원리와 구조」, 『한국우주과학회지』23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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