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후(麋候)"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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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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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미후 |
한글표제 | 미후 |
한자표제 | 麋候 |
상위어 | 과녁 |
관련어 | 호후(虎侯), 웅후(雄侯), 시후(豕侯), 후포(侯布) |
분야 | 정치/군사·국방/병기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최형국 |
용도 | 활쏘기 시험에서 목표물로 사용 |
재질 | 포(布)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미후(麋候)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5년 7월 22일 |
조선시대 의례 중 하나인 대사례 때 종친 이하 문무관의 활쏘기 목표물로 사용한, 천에 사슴의 머리를 그린 과녁.
개설
조선시대 국가의례 중 하나였던 대사례(大射禮)에서 종친 이하 문무관(文武官)의 활쏘기 의례 시 사용한, 사슴 머리를 그린 과녁을 말한다. 보통 미후(麋侯)는 푸른 사각형 바탕의 천 중앙에 작은 사각형의 흰색 가죽을 덧대고 거기에 사슴의 머리와 뿔을 그려 사용하였다. 딱딱한 나무판이 아닌 포(布)를 비롯한 천으로 여러 겹을 덧대 사용하여 뚫리지 않도록 만들었다(『세조실록』 5년 7월 22일).
연원 및 변천
미후는 조선시대 활쏘기 의례나 군사 훈련에서 휴대가 간편하고 살상성을 낮추기 위해 촉을 제거한 화살을 쏠 때 목표물로 사용한 포후(布侯) 중 하나였다. 특히 대사례에서 왕은 웅후(熊侯)라 하여 곰의 머리를 사용하였고, 종친 이하 문무관은 미후라 하여 사슴의 머리를 그려 사용하였다. 왕이 활쏘기를 마치면 웅후를 걷어내고 미후를 다시 설치하여 문무관들이 쏘도록 하였다. 일반적인 군사 훈련에서는 시후(豕侯)라 하여 돼지 머리를 포후에 그리기도 하였다.
형태
- 00016578_그림1_『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에 실린 미후의 모습
참고문헌
-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 『의례(儀禮)』
- 『춘관통고(春官通考)』
- 『태학지(太學志)』
- 임선빈·심승구 외, 『조선전기 무과 전시의 고증 연구』, 충남발전연구원, 1998.
- 심승구, 「조선시대의 무예사 연구―모구를 중심으로」, 『군사』38, 1999.
- 최형국, 「조선시대 기사 시험방식의 변화와 그 실제」, 『중앙사론』24, 2006.
- 최형국, 「조선후기 기병의 마상무예 연구」,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