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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10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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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진성 |
한글표제 | 진성 |
한자표제 | 辰星 |
상위어 | 오성(五星), 오행성(五行星), 행성(行星) |
동의어 | 수성(水星) |
관련어 | 진성(鎭星), 진성(軫星)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자연(현상) |
집필자 | 안상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진성(辰星)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4년 11월 27일, 『인조실록』 16년 10월 25일, 『성종실록』 22년 2월 8일, 『명종실록』 19년 7월 11일 |
태양계 행성 중에서 맨눈으로 보이는 5개 행성 가운데 수성(水星)을 뜻함.
개설
진성(辰星)은 맨눈으로 보이는 다섯 행성 가운데 수성을 지칭한다. 조선시대에 천문 현상을 해석하는 데 지침서가 되었던 『천문류초(天文類抄)』에 따르면, 진성은 방위로는 북방을 상징하고, 계절로는 겨울을 뜻하며, 오행(五行)으로는 수(水)를 뜻하고, 오상(五常)으로는 지혜[智], 오사(五事)로는 청(聽)을 뜻하는데, 지혜가 어지러워지고 국왕이 청을 잃으며 겨울에 합당한 정치를 거슬러 수기(水氣)를 상하게 하면, 그 잘못에 대한 벌이 진성에 나타나 국왕에게 경고한다고 인식되었다. 또한 진성은 죽이는 기운을 갖고 있고 전투를 상징하며, 항상 이민족을 주관하고 형법의 잘잘못을 주관한다고 이해했다.
내용 및 특징
수성은 내행성이며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궤도를 운행하는 행성이다. 그러므로 지구에서 관찰하면 최대이각이 30도에 불과하여 해질 무렵이나 해 뜨기 전 2시간 동안만 관찰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의 1759년(영조 35) 4월 9일자 기록에 따르면, 당시 혜성이 나타나 영조가 몸소 명정전(明政殿) 월대(月臺)에서 안국빈(安國賓), 김태서(金兌瑞) 등과 함께 혜성을 관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조가 천문학자들에게 수성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김태서가 답하기를 “신 등은 사실 아직 본 적이 없으며, 70여 살 된 노인들 말로도 마침내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고 하고 있다. 그만큼 수성은 관측하기 어려운 행성이었던 것이다. 박명 시간이 긴 여름철에는 관측이 어렵고, 박명 시간이 긴 겨울에도 관측이 어려운데, 더군다나 평지가 아니라 산이 있으면 관측은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러한 특성이 별점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천문류초』에 따르면, 한 계절 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그 계절이 조화롭지 못하고, 사계절 내내 보이지 않으면 천하에 대기근이 든다고 보았다.
진성은 토성의 다른 이름인 진성(鎭星)이나 이십팔수의 마지막 별자리인 진성(軫星)과 발음이 같아서 진성(辰星)보다는 수성(水星)으로 지칭하는 기록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더군다나 진성은 관측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드문 것으로 이해된다.
진성이 다른 행성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경우, 별점이 흉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예를 들어, 『천문류초』에 따르면, 진성이 금성을 범하면 태자(太子)를 거스른다고 여겼다. 관상감 천문학자들이 이러한 천문 현상을 관찰한 기록이 남아 있다. 태종 때는 수성이 금성(金星)을 범했다는 기록이 있고(『태종실록』 14년 11월 27일), 인조 때는 “목성, 금성, 수성 세 별이 저성(氐星)에서 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인조실록』 16년 10월 25일). 그러나 대부분은 “수성이 서쪽에 나타났다.”는 기록이거나(『성종실록』 22년 2월 8일), “수성이 동쪽에 나타났다.”는 기록이다(『명종실록』 19년 7월 11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천문류초(天文類抄)』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