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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3:15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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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모환 |
한글표제 | 모환 |
한자표제 | 牟還 |
상위어 | 환곡(還穀) |
동의어 | 맥환(麥還) |
관련어 | 모맥(牟麥), 모맥(麰麥) |
분야 | 경제/재정/환곡 |
유형 | 법제·정책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숙종~고종 |
집필자 | 양진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모환(牟還) |
환곡으로 분급해 준 보리.
개설
환곡으로 사용하는 곡물은 쌀 외에도 다양하였다. 그중에 모환은 대맥과 소맥을 이용하여 구휼 시에 진휼곡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대맥과 소맥은 성질이 쉽게 썩고 상하여 오랫동안 보관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모환은 구황 시에 미곡이 부족한 것을 메우면서 진휼곡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모환은 봄보리와 가을보리 모두가 이용되었다.
내용
환곡으로 이용된 주된 곡물은 쌀이었다. 그렇지만 쌀이 많이 나지 않는 지역에서는 보리를 경작하는 예가 많았으며, 보릿고개라 하여 쌀 등이 떨어져 먹을 것이 모자라는 시기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
모환도 환곡이었으므로 반은 창고에 남기고 반은 나누어 주는 반류반분으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곡물의 성질상 반류반분을 따르기 힘들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진분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고, 곡물의 양을 줄이기 위해 작조(作租)하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곡물을 이전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곳에 따라 작전(作錢)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모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모환의 1/4을 창고에 남기도록 새롭게 정식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는 반류반분에 비하여 많은 곡물을 민간에 나누어 주는 결과를 가져왔고, 기대와 달리 모환을 거두어들일 때 많은 양의 곡물을 바치지 못하는 자들이 발생하였다. 그 때문에 환곡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고, 진휼을 할 때 필요한 구황곡물이 부족하게 되었다.
의의
미곡만으로 환곡을 운영하기에는 필요한 곡물을 모두 마련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특히 논이 적고 밭이 많은 지역에서 모환이 이용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