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수호통상조약(韓比修好通商條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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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3:14 기준 최신판



1901년(고종 38) 3월에 대한제국과 벨기에가 양국의 통상을 위하여 맺은 수호조규.

개설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 이후 한국의 독립을 유지하고자 서양 열강과의 외교적 관계를 확대해 나갔다. 이에 유럽 각국에 공사들을 파견하여 대한제국이 독립국임과 일본의 불법적 침략의 실상을 알렸다. 이런 가운데 유럽의 전형적인 영세중립국인 벨기에([比國(비국), 比利時(비이시)])와 수교하게 되었다.

한비수호통상조약은 1901년 3월 23일 특간전권대신(特簡全權大臣)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 외부대신(外部大臣)으로서 군부대신(軍部大臣)을 겸하여 서리하고 전환국(典圜局)의 사무를 관리하던 박제순(朴齊純)과 벨기에 특간전권대신 뱅카르([方葛], Vangal) 사이에 체결되었다. 1901년 10월 17일 비준서가 교환되고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초대 영사는 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한 뱅카르였다. 그는 1909년(순종 3)까지 상주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종이 대한제국의 독립과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서양 열강과 일본 등을 대립 내지는 견제시키는 외교적 구도를 만들려는 구상에서 이루어진 조약이다.

내용

대한제국과 벨기에의 조약은 최혜국조항이 포함된 전형적인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양국 특간전권대신이 상호 검열하고 회의를 한 뒤 결정한 각 조항 13관(款)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1관은 양국의 우호 증진과 상대국 거주 자국민의 안전 보장, 제2관은 양국 외교관의 상대국 파견과 영사관 설치 및 외교관들의 처우 및 대우, 제3관은 한국 거주 벨기에인의 송사 및 상거래 시 규정, 범인 인도 등 한국 법률 적용 범위, 제4관은 통상 장소의 지정과 조계지의 설정 및 운영, 벨기에인의 한국 내 여행 규정, 제5관은 항구에서의 화물 입출항 과정과 방곡령(防穀令) 및 세금 부과, 제6관은 밀수품 금령과 범인 체포, 제7관은 난파선 구호와 보상, 제8관은 양국에서 상대국 인민 고용의 문제, 제9관은 최혜국대우 조항이다. 제10관은 조약 기한을 규정한 것으로 10년으로 하였으며, 제11관은 조약서 작성 언어에 대해 규정하였다. 제12관은 조약 내용 수정에 대한 내용이며, 마지막 제13관은 조약서 비준과 사본 작성에 대하여 규정하였다.

이외에 조약부속 통상장정(條約附續通商章程) 3관이 있는데, 제1관 선척의 입출항 관련 7개항, 제2관 화물의 선적과 하선 때의 납세 관련 10개항, 제3관 세금의 탈루 방지 관련 6개항이 있다(『고종실록』 38년 3월 23일).

변천

1910년 일제의 강압적인 대한제국 병합에 양국의 조약은 무효가 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1967.
  • 동북아역사재단, 『개항기 재한 외국공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 러시아대장성, 김병린 역, 『구한말의 사회와 경제: 열강과의 조약』, 유풍, 1983.
  • 이순우, 『정동과 각국공사관』, 하늘재, 2012.
  •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 임경석·김영수·이항준 공편, 『한국 근대 외교사전』,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2.
  • 이민원, 「대한제국의 성립과정과 열강과의 관계」, 『한국사연구』 64,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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