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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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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설진 |
한글표제 | 설진 |
한자표제 | 設賑 |
관련어 | 진제(賑濟), 진휼(賑恤), 공진(公賑), 사진(私賑), 자비곡(自費穀), 구급(救急) |
분야 | 경제/재정/환곡 |
유형 | 법제·정책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양진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설진(設賑)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순조실록』 29년 1월 3일 |
재해를 입거나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것.
내용
설진(設賑)은 국가기관이 주가 되어 진휼을 하는 것이었다. 재해를 입은 정도가 아주 심한 곳에는 국가가 보유한 곡식을 내어 공진(公賑)을 실시하고, 재해가 조금 덜 한 곳에서는 사진(私賑)을 실시하였는데 수령이 스스로 마련한 자비곡(自費穀)을 사용하였다. 그 외에 절박한 상태에 처하여 때에 맞추어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를 구급(救急)이라 하였다. 곡물의 작황이 매우 나빠서 겨울 이전부터 백성들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면, 이들을 먼저 뽑아서 급히 구제해야 했다. 구급에 사용되는 곡물은 으레 자비곡이었고, 회감(會減)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설진하는 양은 받는 사람의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달랐으며, 진휼을 시행할 때에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곡물을 몇 차례로 나누어 지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휼 대상자를 선정하는 초기(抄飢)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수령이나 이서 등 진휼 담당자가 대상자가 아닌 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대상에 포함시켜 문제가 되기도 하였고, 지급하는 양을 줄이거나 혹은 질이 낮은 곡물을 지급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용례
三南賑政 或有公賑處 或有私賑救急處 而近來穀薄漸縮 錢貨亦竭 雖或移粟而餉之 給價而貿之 爲道伯守宰者 其何能辦出於無中乎 言念及此 可勝哀痛 國之爲國 賴之於民 民若盡劉 國將何賴 大臣與備堂 會議於籌司 道臣請得及帑貨頒給外錢貨穀物 更加爛商 量宜分劃 以示朝家必欲拯濟之意 (『순조실록』 29년 1월 3일)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전라도공진여구급각영읍진역연보전성책(全羅道公賑與救急各營邑鎭驛捐補錢成冊)』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