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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자금성 내 주요 궁전의 하나.

개설

자금성의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과 함께 외조삼대전(外朝三大殿)의 하나이다. 1420년 건설되었다. 처음 건설 당시 근신전(謹身殿)이었으나 가정 연간(1522~1566년) 건극전(建極殿)으로 개명되었다. 청나라 순치 연간(1643~1661년)에 중건되어 보화전이라 하였다. 청대 보화전은 외국의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거나 새로 선발된 진사들에게 책시(策試: 정치에 관한 문제를 내어 시험하는 것)나 조고(朝考: 진사에 합격한 사람을 천자가 직접 과제를 내어 시험 치는 것)를 시행하는 곳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건륭 연간(1736~1796년) 보화전에서 열린 12월 그믐의 연종연(年終宴) 절차와 음악, 유희 및 여러 사신들의 서열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정조실록』 22년 2월 19일)(『정조실록』 9년 2월 14일).

위치 및 용도

자금성 내의 중화전 북쪽에 위치하였다. 중화전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에 후좌문(後左門), 서쪽에 후우문(後右門)이 있었다. 명 조정에서는 황제가 황후·황태자를 책봉하거나 대신를 위로할 때 이 궁전 위에서 예복을 갖추는 장소였다. 순치·강희 연간 내정 건청궁 등이 중건될 당시 황제가 잠시 보화전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해마다 12월 그믐 황제는 백관과 더불어 이곳에서 연종연을 거행하였는데 몽골, 신강, 티베트의 공주, 대신 및 조선·유구 등 외국의 사신들이 초대되었다. 또한 모든 과거 시험의 책시, 조고 및 전시에 합격한 진사는 모두 이 전각 안에서 좌우로 열병식을 하였다.

변천 및 현황

1420년 처음 건설되었으나 이듬해에 화재를 입어 1440년 중건되었다. 가정 연간에 다시 화재가 나자 1562년 중건되었고 1597년에도 화재를 입어 1626년 재건되었다. 청나라 시기인 1645년 건극전을 보화전으로 고쳤다. 이후 1690년과 1765년에 각각 중수되었다.

형태

보화전은 황유리 기와를 얹은 겹처마로 팔작지붕의 양식이었다. 궁전의 정면은 9칸으로 측면은 5칸이었다. 궁전 뒤 계단석은 9마리의 용과 구름 등으로 장식된 자금성 최대 석조물로 되어 있었다. 궁전의 안 북쪽 중앙에 황제가 앉는 보좌가 있으며 보좌의 앞쪽은 기둥을 없애 넓은 공간을 확보하였다.

참고문헌

  • 鄭天挺·吳澤·楊志玖 主編, 『中國歷史大辭典』, 上海辭書出版社, 2000.
  • 何本方·嶽慶平·朱誠如 主編, 『中國宮廷文化大辭典』, 雲南人民出版社, 2006.
  • 원재연, 「17~19세기 연행사의 북경 내 활동공간 연구」, 『동북아역사논총』 26, 동북아역사재단,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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