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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56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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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몽답정 |
한글표제 | 몽답정 |
한자표제 | 夢踏亭 |
관련어 | 창덕궁(昌德宮) |
분야 | 왕실/왕실건축/궁궐건축물 |
유형 | 건축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해경 |
장소 | 창덕궁 후원 |
규모(정면/측면/칸수) | 정면 2칸/측면 2칸 |
관련 인물 | 정조, 영조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몽답정(夢踏亭)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35년 2월 3일, 『정조실록』 19년 6월 20일 |
창덕궁 후원 신선원전 일대에 있는 정자.
개설
몽답정(夢踏亭)은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전면에 방지(方池)가 있는 정자로 정조 등이 휴식을 취했던 장소이다.
위치 및 용도
창덕궁 후원 내 신선원전(新璿源殿) 일대에 있으며, 정조가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북영에 거둥할 때 휴식을 취했던 정자이다.
변천 및 현황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에 따르면 훈련도감의 북영 안에 천석(泉石)의 승경이 있으며, 숙종이 몽답정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1759년(영조 35)에 “훈장 김성응(金聖應)이 북영에 작은 정자를 한 채 지었는데, 내가 대보단을 바라보고 이름을 몽답정이라고 내려주어 이를 걸게 했다(『영조실록』 35년 2월 3일).”는 기록이 있어 차이를 보인다. 정조는 북영에 거둥하였을 때 몽답정에서 머물며 연꽃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정조실록』 19년 6월 20일). 박제가(朴齊家)의 『정유시집(貞蕤詩集)』을 보면 몽답정에서 연꽃을 감상하며 매미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박규수(朴珪壽)는 『환재선생집(瓛齋先生集)』에서 몽답정에서 바라본 비 내리는 풍광을 묘사하였다. 오늘날에는 정자 앞에 신선원전이 있지만 과거에는 북영의 군사들이 왕래하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형태
전면 쪽 2열은 석주를 세운 누의 형태이며 뒤쪽은 경사지에 기단을 쌓고 초석을 받쳤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작은 온돌방을 안쪽에 두고 분합문을 달았으며 바깥쪽에 툇간을 두었다. 건물의 편액은 없으며 팔작지붕 형태이다. 왼쪽 언덕에 바위글씨로 한자로 ‘몽답정(夢踏亭)’이라고 새겨져 있으나 누가 언제 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자 앞에는 방지와 노송이 한 그루 있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 『정유시집(貞蕤詩集)』
- 『환재선생집(瓛齋先生集)』
-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누정』,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2.
- 임의제, 「조선시대 서울 누정의 조영특성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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