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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 북경 최대의 도교 사원.

개설

조천궁은 명대 황실에서 도교 신상을 모신 도관이다. 천하의 도교를 관장하는 도록사(道籙司)가 이곳에 소재하였다. 본래 남경에 있었으나 영락제가 천도한 뒤 북경에도 조천궁을 건설하였다. 주로 문무관원들이 중요 조회와 제사 전에 예식을 배우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위치 및 용도

북경의 조천궁은 지금의 서성구(西城區) 부성문 안에 위치하였다. 그 규모가 북쪽으로는 지금의 평안리(平安裏) 서대가(西大街)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복수(福綏)에, 동쪽으로는 사자부(獅子府)에 이르렀다. 중대한 조회나 제사가 있을 때 문무관원들은 모두 이곳에서 예식을 배웠다. 조선의 사절도 조천궁에서 예식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광해군일기』 9년 8월 27일). 북경에 간 조선의 사신들은 해인사(海印寺), 제왕묘(帝王廟), 구묘(九廟)와 함께 이곳을 둘러보곤 하였다(『중종실록』 29년 4월 1일).

변천 및 현황

조천궁은 본래 남경의 조천궁을 가리킨다. 남북조(南北朝) 시기에 총명관(總明觀)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명대 홍무 연간(1368~1398년)에 중수되어 조천궁이라고 하였다. 1866년에 중건되어 문묘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남경시(南京市)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북경의 조천궁은 남경 조천궁의 규제를 따라 1432년 건설되었다. 조천궁은 천하의 도교를 관장하는 도록사가 있던 곳으로 북경의 도관으로는 최대의 규모였다. 이후 1480년에 중수되었으나 1626년 큰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참고문헌

  • 『명일통지(明一統志)』
  • 『명회전(明會典)』
  • 『춘명몽여록(春明夢餘錄)』
  • 『일하구문고(日下舊聞考)』
  • 曹群勇, 「“給僧道度牒”與“命道籙司造周知冊”-論明王朝的道教管理制度」, 『貴州文史叢刊』, 貴州省文史研究館, 2014.
  • 晁中辰, 「明朝皇帝的崇道之風」, 『文史哲』, 山東大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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