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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39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왕위 계승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

개설

원자나 원손 같은 왕위 계승자가 태어났을 때, 종친과 백관들이 왕에게 나아가 축하하는 의식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원자나 원손이 태어나면, 태어난 지 3일째에 종묘에 이를 알리는 의식인 탄생고묘(誕生告廟)를 행하였다. 그리고 7일째에는 탄생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글을 내리는 탄생반교(誕生頒敎)를 하고, 종친과 백관들이 함께 탄생진하를 행하였다. 그에 비해 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실 자녀가 태어났을 경우에는 탄생고묘, 탄생반교, 탄생진하 등을 행하지 않았다.

연원 및 변천

진하는 삼국시대부터 행해진 오래된 의식이다. 조선시대의 진하는 1년 중 정해진 날에 정례적으로 거행하는 조의(朝儀)와, 특별한 날에 비정기적으로 거행하는 하의(賀儀)로 구별되었다. 하의는 주로 왕의 즉위일, 왕과 왕비의 탄일, 원자의 탄생, 관례나 책봉, 가례, 왕세자의 입학, 왕실 어른에게 존호를 올릴 때 등에 행하였다. 왕위 계승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탄생진하는 탄강진하(誕降進賀)라고도 불렀다.

원자가 아닌 대군이 태어났을 때 탄생진하를 행하기도 하였다. 세종 때는 임영대군과 광평대군이 태어났을 때, 선조 때는 영창대군이 태어났을 때 탄생진하를 행하였다. 다만 선조의 경우, 영창대군을 위해 따로 탄생교서를 반포하지는 않았다(『선조실록』 39년 3월 7일). 그 외에는 원자나 원손이 태어났을 때만 진하 의식을 행하였다.

절차 및 내용

진하를 거행하는 의식 절차는 대개 의주(儀註)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행사의 내용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진하 의식은 많은 인원을 수용해야 하는 국가 행사였기 때문에 근정전·인정전·명정전·숭정전·중화전 등과 같은 궁궐의 정전에서 행하였다. 진하를 행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왕이 편전에 왕림한 뒤 정전에 들어와 앉는다. 왕세자가 자리에 나아가 네 번 절하고 치사(致謝)한다. 종친과 문무백관이 자리에 나아가 네 번 절하고 치사한다. 교서를 반포하고 네 번 절한다. 왕세손이 태어났을 경우에는 왕세자는 스스로 작성하여 왕에게 올린 축하 글을 직접 읽는다. 백관이 올린 글의 목록과 최고 관리의 축하 글 또한 담당관원이 대표로 읽는다. 신하들이 보내온 예물을 유사(有司)에게 맡기고 왕은 퇴장한다. 탄생진하의 경우,원자나 원손의 탄생을 알리는 탄생교서를 반포하고, 신하들은 왕위 계승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글을 올린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19세기에 순종의 탄생을 축하하는 탄생진하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王世子誕降陳賀圖十貼屛)>은 2005년에 보물 제1443호로 지정되었다. 이 병풍에는 1874년(고종 11) 2월에, 뒷날 순종으로 등극하는 왕세자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창덕궁 인정전에서 거행한 탄생진하 의식이 담겨 있다. 전체 10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폭에 진하 광경이 그려져 있다. 더불어 수고한 관원들의 성명도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국가적인 경사에 함께한 관원들이 이를 병풍의 형태로 제작해 소장하는 것은 당시 관료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일종의 유행이었다.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궁중행사도Ⅰ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서화유물도록 제18집』, 2010.
  • 박정혜,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 일지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