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급외관영내향의(使臣及外官迎內香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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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2:37 기준 최신판



지방에 나가 있는 사신이나 수령(守令)·진장(鎭將) 등이 궐내(闕內)에서 내린 향(香)을 맞이하는 의식.

개설

궐내에서 지방관에게 내리는 향은 지방에서 거행하는 각종 제사 의식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향을 맞이하는 의식은 크게 진설(陳設)과 사배(四拜)의 2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절차의 내용은 조선초기의 『세종실록』 「오례」, 성종대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조선후기의 『춘관통고(春官通考)』, 대한제국기의 『대한예전(大韓禮典)』 등에 모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사신이나 지방관이 내향(內香)을 맞이하는 절차는 『세종실록』 「오례」에 처음 등장하지만 향을 전하는 일은 그전부터 이미 거행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향 봉송 관련 내용은 대부분 내향 봉송자를 길에서 만났을 때 어떤 예를 갖추어야 하는가의 관한 것이다.

1395년(태조 4) 상의문하부사(商議門下府事)조반(趙胖)이 내향을 받들고 개성의 유후사(留後司)로 내려간 일이 있다. 이때 조반은 중도에 관찰사(觀察使)이지(李至)를 만났는데, 내향 봉송을 이유로 이지에게 예를 갖추지 않았다가 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받았다(『태조실록』 4년 8월 14일).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자 조선 정부는 『경제원전(經濟元典)』에 이와 관련된 규정을 수록하여, 왕지(王旨)·교서(敎書)·내향·선온(宣醞)을 받든 사신들이 길에서 서로 만나면 양측 모두 말에서 내려 몸을 굽혀 공경하여 보낸 후에 직차(職次)를 살펴서 서로 읍(揖)하고, 왕지·교서·내향·선온을 가지지 않은 사신이 이런 것을 받든 사신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몸을 굽혀 공경하여 보내도록 하였다. 이어 1430년(세종 12)에 예조(禮曹)에서는 『경제원전』의 규정은 왕명을 받는 사신 간의 예에 국한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왕명을 받들지 않은 관원이 교서·내향·선온을 받든 관원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길 왼쪽으로 몸을 굽히고 섰다가 사신이 지나간 후에 몸을 펼 것이며, 교서·내향·선온을 받든 사람은 말에서 내리지 않도록 할 것을 건의하였다. 왕명을 받은 사신끼리 만났을 때에도 『경제원전』의 규정을 따르되 읍례는 생략하도록 했다(『세종실록』 12년 1월 30일).

절차 및 내용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기준으로 사신급외관영내향의(使臣及外官迎內香儀)의 절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의식 당일에 왕을 상징하는 ‘전(殿)’자를 새긴 나무 패인 전패(殿牌)를 정청(正廳)의 한가운데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내향안(內香案)을 전패 앞에 설치한다. 사신과 외관들은 상복(常服)을 입고 내사(來使)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정청 문 밖에 나가 기다리다가 내사가 도착하면 몸을 굽혀 내향을 맞이한다. 내사가 내향을 받들고 정청에 올라 내향안에 내향을 올려놓으면, 사신과 외관들이 정청의 뜰로 들어와 각자의 자리에서 사배를 한 다음 나간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