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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1:52 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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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구급방 |
한글표제 | 구급방 |
한자표제 | 救急方 |
분야 | 정치/인사/선발 |
유형 | 문헌 |
집필자 | 안상우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구급방(救急方)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12년 6월 13일, 『중종실록』 13년 4월 1일 |
조선시대 향촌에서 위급한 질병에 대처하기 위하여 편찬한 구급 의학서.
개설
조선시대에는 시대별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구급방(救急方)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글 창제 무렵의 표기법으로 쓰인 『구급방』의 현전본은 세조 재위 당시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왕조실록』 여러 곳에서 이 책에 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의과 시험 강서(醫科試驗講書) 중에도 『구급방』이 들어 있으며, 의녀(醫女)의 의학 교육용 교재로 전의감(典醫監)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허준이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을 지은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이미 세종대에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구급방』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간행 취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466년(세조 12) 6월에 “8도에 『구급방』을 각각 2건씩 하사하였다.”라고 하였고(『세조실록』 12년 6월 13일), 선조대 초반에 간행된 『고사촬요(攷事撮要)』 책판목록(冊板目錄)에는 청주(淸州)·평양판(平壤板)이 기재되어 있었다.
국내에는 일부가 파손된 불완전본 1책(가람문고본)만 남아 전하나, 2권 2책의 완전한 판본이 일본 나고야 봉좌문고(蓬左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이 ‘봉좌문고본’은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이 판본은 1975년에 한글학회에서 해제를 붙여 영인 간행한 것이 두루 보급되었고, 현재는 이 ‘한글학회본’과 함께 서울대학교의 가람문고본을 영인한 ‘한국의학대계본’, 서울대학교의 가람문고본을 필사한 ‘일사문고본’ 등이 있다.
구성/내용
조선시대에 널리 유포된 것은 세조대에 언해된 구급방으로 보이며, 이 구급방을 보통 ‘구급방언해’로 불렀다. 책 이름이 비슷한 탓인지 광해군대에 나온 허준의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과 혼동하여 기술한 곳이 많았다. 하지만 두 책은 편제와 내용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있으며, 한글 표기법을 보아도 중종 이전에 사라진 국문자 ㅿ·ㆆ·ᅌ·ㅱ의 쓰임이 달라 허준의 언해설은 전혀 타당하지 않았다. 이러한 국문 표기의 변화는 1527년(중종 22)에 나온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전후로 분획(分劃)되기 때문에 간행 시기를 정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이보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세종대에 이미 존재하였다는 『구급방』인데 실물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원래 모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간행 시기와 한글 창제 시기를 고려해 볼 때 세종대의 『구급방』에는 한글로 된 풀이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구급방언해(救急方諺解)』에는 세조 즉위 후에 주조한 을해활자(乙亥活字)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세조대에 편찬된 것이 확실하며, 『의방유취(醫方類聚)』에 들어 있는 내용이 대량 수록된 것으로 보아 세종대의 『구급방』과는 성격이 많이 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한편으로 『구급방언해』에는 표지나 내용에 모두 언해(諺解)라는 명칭이 붙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에 ‘구급방언해’라는 통칭을 사용한 것은 적절치 못할뿐더러 후대의 『언해구급방』으로 착오를 일으키기 쉬우므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의서에 국한하더라도 성종대에 간행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그리고 중종대에 나온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 『신찬벽온방(新撰辟溫方)』 등의 서명에 모두 ‘언해’라는 명칭이 붙어 있지 않다. 따라서 굳이 서명에 언해라는 명칭을 붙여 혼란을 일으키기보다는 차라리 국문 표기에 따른 이 시기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구급방(救急方)』 정음본(正音本)’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듯싶다.
한글로 번역된 의서와 관련하여 『성종실록』의 기사에는 ‘번이방언(飜以方言)’, ‘역이언문(譯以諺文)’이라고 표현하였고, 연산군대에 나온 『구급이해방(救急易解方)』에 대해서는 ‘역이언자(譯以諺字)’라고 하였으며, 『중종실록』의 『벽온방(辟瘟方)』·『창진방(瘡疹方)』의 간행 기사(1518)에서는 ‘번이이어(飜以俚語)’라는 표현과 함께 ‘상가언해(詳加諺解)’, ‘가언해이간(加諺解以刊)’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중종실록』 13년 4월 1일). 그러므로 중종 이후에 쓰기 시작하여 선조~광해 연간에 최고조에 달한 언해의서(諺解醫書)의 편찬 사업은 세조~성종 연간에 이루어진 구급의서의 직역 위주 한글역문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이것은 이미 『구급간이방』에서 처방 약재에 대하여 원문 없이 한글로 된 설명을 붙인 데서 확인할 수 있었다.
종합하여 본다면 『구급방언해』는 1466년(세조 12)에 구급방을 간행하여 팔도에 각각 2건씩 배포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무렵 이전에 이미 편찬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조선왕조실록』과 『경국대전』에 이 책이 의과 교재로 쓰였고, 의녀의 교재에도 들어 있던 것으로 볼 때 교육용으로도 널리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속(吏屬)의 공무 처리와 부녀자의 교육용으로 한글이 많이 보급된 사실을 상기할 때 이 책이 의녀의 교육에 사용된 까닭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이 책은 교육 목적 외에 실제 구급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구급 처치에 사용하는 재료와 방법도 계절과 상황에 따라 주변에서 바로 구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하였다. 또한 구급 치료법에는 1~3가지의 약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침·뜸· 물리요법 등을 사용하고 있어 이 책 역시 『언해구급방』과 마찬가지로 실용적 목적을 위하여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한의학연구원 편, 『의성허준저작집』(해제) , 한국한의학연구원, 2014.
- 안상우, 「『구급방』-정음(正音)시대의 응급의료 지침서」, 『고의서산책』105회, 2002.
- 정순덕, 「『救急方』의 의사학적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 정순덕, 「허준의 『諺解救急方』에 대한 연구」,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