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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1:52 기준 최신판



조선전기에 사역원의 몽학에서 사용한 몽골어 교재.

개설

『정관정요(貞觀政要)』는 1430년(세종 12) 상정소(詳定所)에서 제학(諸學)의 취재(取才)에 출제서를 정하여 보고한 계문(啓文)(『세종실록』 12년 3월 18일)에 몽골어의 역관 취재에 사용할 출제서로 다른 몽골어 교재들과 함께 등재되었다. 또 『경국대전』 「예전」 역과몽학조의 과시서에 『정관정요』라는 서명이 있고, 『통문관지(通文館志)』 권2 「과거(科擧)」 몽학팔책(蒙學八冊)조에도 이 책의 이름이 보여 이 시대 몽골어 교재였음을 알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정관정요』는 『원사(元史)』권24에 의하면, 1312년(원 인종 원년)에 원(元) 인종(仁宗)이 이 책을 열람하고 아림철목아(阿林鐵木兒)에게 몽골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원 문종(文宗)이 1332년(원 문종 복위4)에 규장각(奎章閣) 학사원(學士院)으로 하여금 파스파문자로 번역한 몽골어를 기술하게 하였다는 기사가 『원사』 권36에 전한다. 『원사』 권137 「열전」 제24에 의하면, 이때에 번역한 몽골어를 파스파문자로 기술한 것은 찰한(察罕)과 조원용(曹元用)이라고 하였다. 위구르문자로 쓰인 것과 파스파문자로 된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조선에 유입되어 몽골어 교재로 편찬되었는지는 원전이 전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위구르문자로 쓰인 것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몽골어 교재는 왜란과 호란 이전까지 사역원의 몽학에서 사용하다가 전란 이후에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첩해몽어(捷解蒙語)』 등 사역원에서 자체적으로 편찬한 몽골어 학습서와 바뀌었다.

서지 사항

원전이 전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구성/내용

『정관정요』는 원래 당(唐)의 오긍(吳兢)이 정관(貞觀)의 치(治)라 하여 중국 역사 상 가장 좋은 정치를 편 것으로 알려진 당(唐)나라 태종(太宗)이세민(李世民)의 치적을 모아서 10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조선전기에 역과(譯科)와 각종 취재(取才)에서 몽학, 즉 몽골어의 출제서로 사용되었다. 역관의 교재에 이처럼 정치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역관들을 단순한 통역보다는 통치의 관리로서 양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정광, 『역학서 연구』, J&C, 2002.
  • 정광, 『조선시대의 외국어교육』, 김영사, 2014.
  • 한우근 외, 『역주 경국대전』(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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