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 | *[[관령(한성부)]] |
− | | + | *[[관령(일본)]] |
− | {{개념용어|대표표제=관령|한글표제=관령|한자표제=管領|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리(里), 방(坊), 부(部), 부방제도(部坊制度)|분야=정치/행정/문서·행정용어|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태조~순종|집필자=이미선|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0712|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ka_12703018_001 『중종실록』 27년 3월 18일]}}
| |
− | | |
− | 한성부의 5부(部)에 속해 있던 각 방(坊)의 행정 책임자.
| |
− | | |
− | =='''내용'''==
| |
− | | |
− | 한성부는 지방의 면리제도(面里制度)와는 달리 부방제도(部坊制度)로 운영되었다. 부방제는 도시 지역을 4부 또는 5부로 나누고 그 아래에 방을 두었으며, 방 아래에는 리(里) 또는 동(洞)을 두었다. 이 제도는 1394년(태조 3)에 5부에 속한 방의 명칭을 정하면서 처음 시행되었다. 1428년(세종 10) 윤4월에는 방의 수가 성안 46개와 성 밖 15개로 모두 61개였으나, 명종 때 편찬된 『경국대전주해』에 따르면 성안의 방이 49개로 늘어났다.
| |
− | | |
− | 한성부에 속한 관령(管領)은 다른 군현의 이정(里正)이나 이장(里長)이 수행하던 직무를 담당하였다. 즉 장정의 동태와 호구 수를 파악하고, 도적을 잡는 등 치안을 유지하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그 외에 성 밖의 관령은 [[권농(勸農)]]의 책무도 수행하였다.
| |
− | | |
− | =='''용례'''==
| |
− | | |
− | 請推漢城府官員及各坊管領後 密伺其人 執捉推問 大懲其罪([http://sillok.history.go.kr/id/kka_12703018_001 『중종실록』 27년 3월 18일])
| |
− | | |
− | =='''참고문헌'''==
| |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 |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
| |
− | | |
− | [[분류:정치]][[분류:행정]][[분류:문서·행정용어]][[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태조~순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