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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4일 (수) 22:04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에 있었던 파주보광사의 산내 암자.

개설

금강암(金剛庵)은 조선시대 고령사(高嶺寺)의 산내 암자였다. 고령사는 지금의 파주보광사인데, 금강암의 터가 어디인지는 불분명하다.

내용 및 특징

보광사(普光寺)는 조선시대에 고령사(高嶺寺)로 불렸는데, 고령사와 관련해서는 1409년에 산사태가 일어나 고령사 아랫마을 주민 22인이 압사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태종실록』 9년 7월 3일).

그리고 1545년 을사사화 때 희생된 계림군(桂林君)이유(李瑠)가 고령사에 잠시 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유는 명종의 즉위와 관련하여 벌어진 윤임(尹任) 일파와 윤원형(尹元衡) 일파 사이에 벌어진 정쟁에서 윤임이 제거되자 자신에게 해가 닥칠 것을 예감하고 피신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령사 금강암에 머물고 있던 승노(僧奴) 경원(敬元)을 만나 함경도 안변으로 갔으나 체포되었고, 결국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다(『명종실록』 즉위년 10월 5일).

그 외에 금강암과 관련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보광사 산내 암자로 도솔암과 영묘암이 있지만 금강암과의 관련성은 불분명하다.

참고문헌

  • 황인규, 「파주 보광사의 역사와 위상」, 『대각사상』12, 200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