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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5:50 기준 최신판




총론

[1498년(연산군 4)∼1546년(명종 2) = 49세.] 조선 중기 중종~명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선릉참봉(宣陵參奉)이다. 자(字)는 정원(正源)이고, 호(號)는 장음정(長吟亭)이다. 본관은 안정(安定)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창릉참봉(昌陵參奉)나세걸(羅世傑)이고, 어머니 풍양조씨(豐壤趙氏)는 대사헌조익정(趙益貞)의 딸이다. 홍문관 부제학(副堤學)나숙(羅淑)과 성균관 전적(典籍)나익(羅瀷)의 형이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고, 동생 나숙(羅淑)과 함께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이휘(李煇)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화(禍)를 당하여, ‘<을사명현(乙巳名賢)>의 두 나씨[二羅]’라고 일컬어진다.

중종 시대 활동

1534년(중종 29) 사마시(司馬試) 생원과(生員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7세였다.[<사마방목>] 벼슬에 나아가기를 싫어하여 과거를 보지 않았다. 음직(蔭職)으로 선릉참봉(宣陵參奉)이 되었다. 중종 말에 계비(繼妃)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세자(世子: 인종)를 폐위하고 자기가 낳은 대군(大君: 명종)을 세자로 삼으려고 하였으므로, 인종의 외삼촌 윤임(尹任)의 대윤(大尹) 일파와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尹元衡)의 소윤(少尹) 일파가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때 나식은 대윤의 윤임을 도와 소윤의 윤원형과 싸웠다.

인종 시대 활동

1544년(인종 즉위) 인종이 즉위하여, 윤임의 대윤 일파가 정권을 잡자, 윤임에게 사림파(士林派)를 등용하도록 건의하여, 동생 나식도 홍문관 부제학(副提學)에 임명되었다.

명종 시대 활동

1545년(명종 즉위) 인종이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겨우 12세의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다. 이때 정권을 잡은 윤원형의 소윤 일파가 <을사사화>를 일으켜서, 윤임의 대윤 일파를 일망타진할 때 나식⋅나숙 형제도 <이휘의 옥사>에 연루되어 참화(慘禍)를 당하였다. 이때 나식은 대윤의 중심인물로 지목되고 <이휘의 옥사>에 연루되어, 전라도 고흥 흥양(興陽)으로 유배되었고, 1546년(명종 1) 평안도 강계(江界)로 이배(移配)되었다가, 동생 나숙과 함께 같은 날에 사사(賜死)되었는데, 향년이 49세였다.

1568년(선조 1) 영의정이준경(李浚慶)의 상소로 동생 나숙과 함께 신원(伸寃)되었다.

문집으로는 『장음정집(長吟亭集)』이 남아 있다.

성품과 일화

성품은 호협하고 의(義)를 좋아하였다.

나식은 평소 이휘(李煇)와 가깝게 지냈는데, 이휘는 대윤 윤임의 사위 이덕응(李德應)과 절친한 사이였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서 윤임의 대윤 일파가 화(禍)를 당할 때 윤임의 사위 이덕응도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는데, 이덕응은 역모(逆謀)를 함께 도모한 사람으로 이휘를 끌어들였다. 이휘가 체포되어 의금부로 끌려가서, 나식⋅나숙 형제도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자백하였다. 이에 나식⋅나숙 형제도 체포되어, 이휘와 함께 대질 심문을 받고, 참화를 당하였던 것이다.[『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그때 소윤의 이기(李芑) 등이 <이휘의 옥사>를 심문하고, 나식의 성품과 반역의 동기를 말하기를, “나식은 본래 흉악하고 패려한 사람으로서 항상 불측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고, 하고, 나식의 죄를 열거하기를, “중종 말기에 나식은 문정왕후가 세자(世子: 인종)를 폐출하고 자기가 낳은 대군(大君: 명종)을 세자로 세우려고 한다는 말을 퍼뜨리며, 말하기를, ‘동궁(東宮: 인종)을 몰래 엎고 경주(慶州)에 피해 가서 있겠다.’고 하였으며, 그 뒤에 인종이 즉위한 초기에 나식은 친구 이휘 등과 함께 종실 가운데 어진 사람을 택하여 대통(大統)을 잇게 하자는 주장을 먼저 제기하였다.”고 하였다.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나식이 중종 말엽에 세자(世子: 인종)를 보호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그 위태로운 상황을 시(詩)로 읊기를,

“해는 창강 위에 저무는데, / 日暮滄江上

하늘은 차고 물결은 절로 일구나. / 天寒水自波

외로운 배가 빨리 닿아야 할 텐데, / 孤舟宜早泊

풍랑이 밤새 더욱 일겠구나. / 風浪夜應多”

하였다.[『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10]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고봉집(高峯集)』
  • 『기언(記言)』
  • 『매천집(梅泉集)』
  • 『명재유고(明齋遺稿)』
  • 『목재집(木齋集)』
  • 『미암집(眉巖集)』
  • 『백사집(白沙集)』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송사집(松沙集)』
  • 『심석재집(心石齋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오산집(五山集)』
  •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 『임하필기(林下筆記)』
  • 『장음정유고(長吟亭遺稿)』
  • 『장음정집(長吟亭集)』
  • 『지봉유설(芝峯類說)』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해동잡록(海東雜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