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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5:49 기준 최신판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박성원(朴聖源)이 우리나라 제현(諸賢)의 예설(禮說)을 종류별로 초집한 예설서이다.

개설

이 책은 읽는 사람의 편의를 도모하여, 조목을 만든 순서는 『가례(家禮)』의 차례대로 하지 않은 곳이 있고, 오복(五服)의 제도는 참최(斬衰) 3년부터 시작하였고, 상장(喪葬)·도구(道具)에 관해서는 치상구(治喪具)부터 기록하였다. 제사는 사례(四禮)를 위주로 하였다. 제현의 학설 중에서 이동(異同)이 있을 때에는 모두 기록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박성원(朴聖源)이 관혼상제에 관한 상하 수백 년 간의 허다한 의문, 변례(變禮), 여러 학설을 일목요연하게 초록하고, 사견을 첨가해서 편찬한 책이다. 만문(卍紋) 바탕의 담황색 표지를 5침안으로 편철한 선장본이다. 권두에는 편자가 쓴 서문, 범례, 인용서목, 목록을 수록하고, 범례란 표기 없이 범례를 수록하였다. 1783년(정조 7) 교서관에서 간행한 운각인서체자본도 전래되나, 본서는 필사본이다. 본문은 여러 사람이 나누어 필사하여 서체가 다양하다.

읽는 사람의 편의를 고려하여 조목을 나누었는데, 『가례』의 차례대로 하지 않은 곳도 있다. 학설 중에 이론이 있을 때는 모두 기록하였다. 내용은 권1~2는 관례(冠禮), 권3~19는 상례(喪禮), 권20~23은 제례(祭禮), 권24는 제례와 부록 2권으로 종법(宗法)과 거가잡의(居家雜儀)의 순으로 편찬했다. 이로써 상하 수백 년 간의 허다한 의문, 변례와 다양한 여러 학설을 넣어 일목요연하게 만들었다.

편자는 자서에서 일용의 예(禮)는 관혼상제가 가장 중요한데, 고금의 변리는 주자(朱子)의 『가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잠계(潛溪) 이유철(李惟哲)이 『사례집설(四禮集說)』을 만들었고, 다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해(問解)』,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예의(禮疑)』, 남계(南溪)박세채(朴世采)의 『예설(禮說)』을 합쳐 한 책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두 책을 모두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이유철의 아들 이희정(李希正)이 유언을 받들어 가져오므로, 동문수학한 유언집(兪彦鏶)과 함께 도암(陶庵) 이재(李縡) 선생에 문의하여 다시 편찬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철의 『사례집설』은 주자의 『가례』에 보충이 되고, 우리나라 학자의 예설이 적절하게 잘 해석되었으므로 편입되어 있다. 그 중에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다시 여러 문집 가운데 29가의 37권을 발췌하여, 조목조목 보충해 넣었다. 10수년의 정력을 쏟아 원서 24편, 부록 2편을 비로소 완성해서 『예의유집(禮疑類輯)』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 책은 1783년(정조 7) 교서관에서 간행한 운각인서체자본에는 동궁으로 있을 때 유선(諭善)으로 지도한 인연으로 정조가 쓴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또 서정수(徐鼎修)의 서문과 1758년(영조 34)에 쓴 박성원의 자서가 있다. 정조는 서문에서 본조의 열성이 유학을 진작한 후 300년에 예에 밝은 사람이 4~50명이나 되어, 고훈과 학설이 산재해 있어 한데 모으기 힘들었는데, 박성원이 여러 학자의 설을 모아 관혼상제를 목적으로 하고, 다시 종법과 잡례를 망라해서 서적을 만들었으므로, 가상히 여겨 교서관에 명하여 간행케 하였다고 경위를 밝혔다.

이 책도 완벽하지 않아, 이후 보충한 책이 저작되었다. 곧 정암(貞庵) 민우수(閔遇洙)의 제자인 우송(友松) 오재능(吳載能)이 편찬한 『예의유집속편(禮疑類輯續編)』 3권이다. 박성원이 견문하지 못한 것과 『예의유집』 후에 간행된 것과 특히 강석기(姜碩期)의 『월당집(月塘集)』을 참고하여 보충하였으며, 모든 조목은 『예의유집』을 따랐으나, 필요한 경우에는 새 항목을 넣었다.

서지 사항

28권 15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국립중앙도서관)이다. 10행 20자의 무계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5.6×15.3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관혼상제에 대한 해설서로서, 주희(朱熹)의 『가례』를 따르지 않은 곳도 있다. 오복(五服)의 제도는 참최(斬衰) 3년부터 시작했고, 상장(喪葬)과 도구(道具)에 관해서는 치상도구(治喪道具)부터 기록하였다. 제례는 사례(四禮) 위주로 제현의 설 가운데 서로 같지 않을 때는 모두 기록한 것이 특색이다.

권1은 관례와 삼가관례(三加冠禮)에 대한 문답, 권2는 혼례, 권3은 상례(喪禮), 권4도 상례(목욕에서 혼백까지), 권5·6은 오복, 권7은 조석곡(朝夕哭), 권8은 장기(葬期)에서 성분(成墳)까지, 권9는 폄(窆: 하관)에서 여묘(廬墓)까지, 권10은 우제(虞祭)· 소상(小祥), 권11은 대상(大祥), 권12는 거상잡의(居喪雜儀), 권13은 상중행례(喪中行禮), 권14는 부재모상(父在母喪), 권15는 국휼(國烅), 권16은 상변례(喪變禮), 권17은 계유변빈(筓有變殯), 권18은 도유상(途有喪), 권19는 초빈(草殯)과 권장(權葬), 권20∼24는 제례, 부록 2권은 종법(宗法)·거가잡의(居家雜儀), 그밖에 목록이 있다.

정조는 어제서문에서, “본조의 열성(列聖)이 유교를 진작한 뒤 300년 동안 예에 밝은 사람이 40∼50가에 이르니, 예에 대한 고훈과 학설이 각처에 산재해 한 데 모으기가 어려웠는데, 박성원이 이를 극복하고, 종법과 잡례를 총망라해 책을 만든 것이 가상해, 교서관에 명해 간행하도록 한다.”고 그 간행 경위를 밝혔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후학들의 예서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참고문헌

  • 김윤정, 『18세기 禮學 연구-洛論의 禮學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 김윤정, 「謙齋 朴聖源의 禮學과 『禮疑類輯』의 성격」, 『한국문화』 제61집,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2013.
  • 이승연, 「丘濬의 예학에 관한 고찰-『家禮儀節』을 중심으로」, 『동양예학』 제11집, 동양예학회, 2003.
  • 이승연, 「주자 예학의 현대적 독해-주자 예학의 형식주의적 특성을 중심으로-」, 『동양사회사상』 제15집, 동양사회사상학회, 2007.
  • 한기범, 「17세기 호서예학파의 예학사상-왕조례(王朝禮)의 인식을 중심으로-」, 『한국사상과 문화』 제26호, 한국사상문화학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