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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5:49 기준 최신판




총론

[생몰 연대 미상.] 조선 중기 명종~선조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승정원 승지(承旨), 전주부 윤(全州府尹)이다. 자(字)는 응실(應實)이고, 호(號)는 아계(丫溪)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아버지는 고한형(高漢衡)이고, 어머니 고령신씨(高靈申氏)는 신희연(申希演)의 딸이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명종 시대 활동

1546년(명종 1) 증광(增廣)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문과방목>] 공조 좌랑(佐郞)으로서 『중종실록』에 이어 『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2년(명종 7) 사헌부 지평(持平)이 되었다.

1554년(명종 9) 평안도 감군어사(監軍御史)로 나갔을 때, 맹산(孟山)과 영원(寧遠) 두 고을의 흉년이 가장 심하였으므로, 조정에 진상하는 일체의 잡물(雜物)을 감면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1555년(명종 10) 사간원 헌납(獻納)을 거쳐서, 이듬해 병조 정랑이 되었다.

1557년(명종 12) 이조 정랑(正郞)으로 발탁되었으나 양사(兩司)로부터 시비에 어두울 뿐 아니라, 권세가에 아부한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65년(명종 20) 서용되어 홍문관 교리(校理)와 사간원 사간(司諫)을 역임하고, 이듬해 의정부 사인(舍人)에 이어 사헌부 집의(執義)에 임명되었다.

선조 시대 활동

1571년(선조 4) 승정원 승지(承旨)로 발탁되었고, 1574년(선조 7) 전주부윤(全州府尹)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동상집(東湘集)』
  • 『문봉집(文峯集)』
  • 『미암집(眉巖集)』
  • 『백담집(栢潭集)』
  • 『송당집(松塘集)』
  • 『옥계집(玉溪集)』
  •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