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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5:49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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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가례원류 |
한글표제 | 가례원류 |
한자표제 | 家禮源流 |
분야 | 예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현종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유계 |
간행처 | |
간행년일 | 1714 |
권책수 | 14권 8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표제 | 가례원류(家禮源流) |
소장처 | 규장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가례원류(家禮源流) |
조선 효종대 부제학유계(兪棨, 1607~1664)가 관혼상제의 사례(四禮)에 관한 예제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개설
이 책은 『가례』의 본문을 기본으로 삼고, 삼례(三禮 :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에서 관련되는 사항을 뽑아서 주석으로 삼아, 이를 원(源)이라 하고, 주희 이후 여러 학자들의 사례(관혼상제(冠婚喪祭))에 관한 예절을 나누어 모아 유(流)라고 하였다. 이것은 『가례』의 연원과 그 발달을 비교하고 고찰하여, 가례의 본질과 그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편찬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고려 말에 도입된 『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되는 것은 조선시대 16세기 중반부터였으며, 그 이후에 다양한 예서가 편찬되었다.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가례고오(家禮考誤)』는 『주자가례』의 의문점을 자기 나름대로 수정한 최초의 예서(禮書)로 초보적인 가례주석서(家禮註釋書)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본격화하는 시초가 되었다.
유계가 1640년대 전반에 저술한 『가례원류(家禮源流)』는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었는데, 이 책은 유계가 관혼상제의 사례(四禮)에 관한 예제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그런데 사정상 간행하지 못하였다. 그 뒤 윤선거(尹宣擧)의 아들 증(拯)이 같은 문하였으므로 여기에 증보를 가하였다.
1713년(숙종 39) 그의 손자 유상기(兪相基, 1651~1718)가 용담현령으로 있을 때 임금의 허락을 받아 간행하였다. 그러나 유계의 제자이기도 했던 윤증(尹拯, 1629~1714)이 자신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 1610~1669)도 이 책을 같이 편찬했다는 이의를 제기해, 두 집안 간에 분쟁이 빚어졌을 뿐만 아니라, 회니시비(懷尼是非: 송시열이 살던 회덕과, 윤증이 살던 이성의 첫 자를 따 회니시비라 함. 이는 주자학 도통주의에 입각하여 정국을 운영하려 했던 노론계와 이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현실적으로 정치를 운영하고자 했던 소론계의 대립이 송시열과 윤증 간의 감정과 얽혀 일어난 사건)로까지 비화하였다.
소론 측의 전라도 유생 유규(柳奎)는 권상하(權尙夏)의 서문과 정호의 발문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노론 측에서는 연일 정호를 적극 비호하는 상소를 올렸다. 결국 숙종이 정호를 파직시키고 유상기를 나주에 유배시키는 조치로 노·소론의 정쟁을 마무리했다.
서지 사항
14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은 22×16.7cm이며, 1면 10행의 유계(有界)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제1권은 통례(通禮)·사당(祠堂), 제2권은 통례 심의제도(深衣制度), 제3권은 통례 사마씨거가잡의(司馬氏居家雜儀), 제4권은 관례(冠禮), 제5권은 혼례(婚禮), 제6권은 상례(喪禮) 초종(初終)~대렴(大斂), 제7권은 상례 성복(成服), 제8권은 상례 조석곡전(朝夕哭奠)~분상(奔喪), 제9권은 상례 치장(治葬), 제10권은 상례 천구(遷柩)~반곡(反哭), 제11권은 상례 우제(虞祭)~담(禫), 제12권은 상례 거상잡의(居喪雜儀)~조부모망답인계장(祖父母亡答人啓狀), 제13권은 제례(祭禮) 사시제(四時祭), 제14권은 제례 초조(初祖)~묘제(墓祭)로 구성되어 있다. 아울러 중간중간에 종법, 반장의절보(反葬儀節補), 개장의절보(改葬儀節補), 길제비요보(吉祭備要補), 사토지의절보(祀土地儀節補), 사조의절보(祀竈儀節補)와 같은, 『주자가례』에는 없지만 『가례의절(家禮儀節)』 등에서 보완한 항목들도 들어있다. 이 책은 『주자가례』의 본문을 경(經)으로 하고, 『의례』·『주례』·『예기』 등의 경전에서 취한 것을 큰 글씨로 주석을 달아 ‘원(源)’이라 하며, 후대 중국과 조선 학자들의 예설 가운데 참고할 만할 것을 취하여, 작은 글씨로 기록하고 ‘유(流)’라 하여, 『주자가례』의 연원과 전개과정을 밝히고자 하였다. 특히 『주자가례』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주석한 이전의 가례주석서와는 달리 『주자가례』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주석을 붙인 최초의 가례주석서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사례의 발달과정을 항목별로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참고가 되지만, 여러 고전에서 관계사항을 발췌하여 엮은 것일 뿐으로, 엮은이의 주장이 전혀 없어 조선시대 가례인식의 한 면모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노· 소분쟁의 한 쟁점이 되었다는 데에 오히려 비중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용흠, 「종대 전반 회니시비와 탕평론 : 윤선거·윤증의 논리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제148호, 한국사연구회, 2010.
- 변원종, 「시남의 『가례원류』의 학맥과 관례에 대한 연구」, 『동서철학연구』 제41권, 한국동서철학회, 2006.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3:당쟁과 정변의 소용돌이』, 한길사, 2001.
- 정구선, 『발칙한 조선의 지식인을 만나다』, 비전비앤피 애플북스, 2009.
- 정지훈, 「윤선거의 《희문역상함도(羲文易相含圖)》에 나타난 예학적 함의」, 『민족문화논총』 제56집, 대구: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4.
- 황의동, 「윤선거의 학풍과 사상」, 『동서철학연구』 제36권, 한국동서철학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