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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1:19 기준 최신판



조선후기 왕후의 혼전(魂殿)으로 사용하기 위해 경복궁에 지은 전각.

개설

문경전은 고종대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전각이며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문경전은 회안전(會安殿)과 같이 이용되었다. 혼전은 왕이나 왕비의 장사를 마치고 종묘에 입향할 때까지 신위를 모시는 곳이다. 왕의 신위는 삼년상 동안 모시고, 왕비의 신주는 왕이 죽어 종묘에 입향(入享)한 뒤 왕을 따라 배향할 때까지 혼전에 모셨다.

혼전은 사용 기간이 3년이나 되고, 조선후기에는 편전을 혼전으로 전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편전의 사용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고종대에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는 혼전으로 사용할 전각을 별도로 지어 국상에 대비했다.

위치 및 용도

문경전과 회안전은 빈전인 태원전(泰元殿)과 함께 경복궁 내 서북쪽에 있다. 문경전은 고종초에 중건되어 1890년(고종 29) 신정왕후(神貞王后)의 국장을 치룰 때 처음 사용되었다(『고종실록』 27년 4월 18일). 태원전에서 발인 후 문경전에 신주를 모시다가 1892년(고종 29) 종묘에 옮겨 부묘(祔廟)했다. 회안전은 건립 이후 실제 혼전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문경전의 보조적인 역할만 했는데, 신정왕후 국상 시에 재궁의 임시 보관처였다.

변천 및 현황

신정왕후의 혼전을 꾸미면서 문경전에 어재실(御齋室)과 예재실(睿齋室), 동행각을 신축하였다. 1904년(광무 8) 순종 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승하하자, 문경전과 회안전을 경운궁 북서쪽 영성문 안으로 옮겨 의효전(懿孝殿)이라는 혼전으로 사용하였다(『고종실록』 41년 11월 5일). 이 전각은 1921년에 창덕궁 신선원전(新璿源殿) 영역으로 옮겨졌다.

형태

문경전과 회안전의 평면은 같은 형태인데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남행각과 북행각으로 복도가 설치되어 있다. 두 전각의 행각은 전각 전체를 둘러싼 ㅁ자형이 아니라 회안전의 행각과 같이 ㄷ자형이었다가 신정왕후의 국상을 치르면서 문경전의 행각이 증축되었다. 이 일곽의 정문은 청목문(淸穆門)이며 그 안에 숙설소(熟設所)가 있고 숙설소에서 동북쪽에는 문경전, 북쪽에는 회안전이 있다. 회안전과 문경전의 사이에 있는 3칸의 정양문(正陽門)은 태원전 일곽으로 가는 문이다.

청목문 안에는 ㅁ자 형태의 제관방과 원역처소가 있고 그 동쪽의 흥청문(興淸門)을 들어서면 문경전 일곽이다. 문경전에는 ㅁ자 형태의 행각이 있고 남행각 동쪽에는 어재실을 두었다. 어재실 남쪽에 있는 임숙문(臨肅門)은 사주문으로 동쪽의 숙설소로 통한다. 문경전 남행각의 문은 융소문(隆昭門)이다. 문경전은 행각 바깥쪽으로 담장이 있는데 북쪽 담장에 각각 건소문(建昭門)과 영서문(寧西門)이 있다.

청목문 안쪽에 있는 3칸의 경유문(景維門)을 들어서면 회안전 행각이 있다. 회안전은 서행각이 없으며 남행각문은 장유문(章猶門)이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궁궐지(宮闕志)』
  • 『신정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神貞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
  • 『효모전일기(孝慕殿日記)』「북궐도형(北闕圖形)」
  • 이혜원, 「경복궁 중건이후 전각구성의 변화 -「경복궁배치도」와 「북궐도형」을 중심으로-」, 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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