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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5:48 기준 최신판



이 책은 권근(權近, 1352~1409)이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문집인 『도은집(陶隱集)』을 교감·표점한 시문집이다.

개설

이 책은 조선 전기 권근이 왕명을 받아 편집하여, 1404년(태종 4)에 간행하였다. 내용은 시(詩)·서(序)·기(記)·전(傳)·찬(贊)·장(狀)·발(跋)·표(表) 등이 실려 있다. 현재 전하는 것은 후대에 중간(重刊)된 것이다.

원저자인 이숭인은 고려 말에 태어나, 문학과 도학을 겸하여 국내외에 이름을 떨친 문인으로, 『도은집』은 그의 생애와 사상 ·문학을 담은 귀중한 자료로 전해진다.

『도은집』은 최소한 10여 차례 이상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정도로 다양한 이본이 존재하는데, 이는 도은이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정치적·사상적·문학적 위상이 높았다는 점을 암시한다. 또한 임진왜란 이전의 희귀본만도 4종 이상이 남아 있어, 문헌학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고려 후기의 학자 이숭인(李崇仁)의 시문집으로 5권(시 3권, 문 2권)이 전한다. 간행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저자 생전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는 생전에 벌써 두 편의 서문과 세 편의 발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쓰인 발문은 이숭인이 31세 되던 1377년(우왕 3) 11월 27일 이색(李穡)이 지었다. 그러나 당시에 시고(詩稿)를 간행한 것인지 명확히 알 도리가 없다. 『고려사(高麗史)』에서도, “『도은집』이 있어 세상에 전한다.”라고 하였지만, 그 간행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더욱이 저자 생전에 간행되었다 하더라도, 그 판본이나 책의 권수는 알 수가 없다. 다음에 붙은 발문은 명(明)나라 장보(張溥)가 지은 것으로 이숭인이 39세 되는 1385년(우왕 11) 10월에 지었고, 마지막 발문은 명나라 고손지(高巽志)의 것으로 이숭인이 43세 되던 1389년(공양왕 1)에 지었다. 또한 서문 가운데 제일 먼저 지은 것으로는 이숭인이 39세 때 명나라의 주탁(周倬)이 지었고, 다음으로는 이숭인이 42세 되던 1388년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것이다. 그 뒤 그의 사후 14년인 1406년(태종 6) 조선태종이 『도은집』을 편찬하고 2책으로 간행되었다. 후에 최립(崔岦)이 『도은시집』을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는데, ‘신인도은시집발(新印陶隱詩集跋)’이 『간이집』에 실려 있다.

서지 사항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9행 15자의 상하흑구내향어미(上下黑口內向黑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4.8×17.2㎝이며, 계명대학교 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고려 말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이숭인의 시문집으로 내용 중에는 당시 불교와 관계가 있는 글이 많으며, 특히 『여흥군신륵사대장각기(驢興郡神勒寺大藏閣記)』는 이색의 대장경 인성(印成)과 장경(藏經)까지의 경위를 서술한 명문으로 이숭인과 불교와의 관계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문장솜씨 또한 뛰어난 글이다. 서문 가운데에는 시와 관계되는 서가 5편으로 그의 문학관을 알 수 있다.

고려는 과거제 실시 이후 제술과가 중시되면서 사장(詞章)과 문예중심으로 문풍(文風)이 기울어졌으나, 주자학이 수입된 뒤로는 안향(安珦)·백이정(白頤正)·이제현(李齊賢)·이곡(李穀)을 거쳐 삼은(三隱)으로 이어지면서, 문학의 흐름도 도학적인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숭인은 이 시기에 태어나, 문학과 도학을 겸하여 국내외에 명성을 떨친 문인으로서 『도은집』은 이러한 그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문학을 담은 귀중한 자료이다.

『고려명현집』의 영인본 내용을 보면, 권1에는 사(辭) 1편과 오언· 칠언고시 30제(題)로 모두 31제가 있고, 권2에는 오언·칠언율시로 154제, 권3에는 절구 152제로 시만 모두 336제이고 사가 1편이다. 권4·5는 문으로 기 7편, 지(誌) 1편, 서(序) 12편, 전(傳) 2편, 제후(題後) 3편, 의(議) 1편, 행장 1편, 찬(讚) 1편, 설·전(箋) 각 1편, 표(表) 17편, 전(牋) 4편 등 모두 51편이 실려 있다. 시 중에는 저자가 15세 때의 시도 있다. 또한 ‘처용가(處容歌)’·‘정과정곡(鄭瓜亭曲)’ 및 단오(端午)·팔관회(八關會) 등을 소재로 한 민족적인 경향의 시가 상당히 보이며, 시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제승사(題僧舍)’·‘오호도(嗚呼島)’를 들 수 있다. ‘제승사’를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의하면, 이색이 “당나라 시에 가깝다.”고 평가하자, 이숭인의 명성이 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중원잡제(中原雜題)’·‘영안남(咏安南)’·‘영유구(咏琉球)’ 등의 시를 남겨, 당시 중국을 비롯한 안남·유구 등의 풍속과 문화교류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문’은 원나라와의 빈번한 외교문서 교환이 있을 때 이숭인이 문서작성을 도맡았기 때문에, 그의 ‘문’ 가운데서 ‘표’가 가장 많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초옥자전(草屋子傳)』은 당시 정계에서 상당한 활약을 한 김진양(金震陽)을 다루었는데, 김진양의 내면세계에 대하여 깊이 공감한 바를 나타내었다. 기에는 당시 불교와 관계가 있는 글이 많으며, 특히 ‘여흥군신륵사대장각기(驪興郡神勒寺大藏閣記)’는 이색의 대장경 인성(印成)과 장경(藏經)까지의 경위를 서술한 명문으로, 이숭인과 불교와의 관계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문장 솜씨 또한 뛰어난 글이다. 서문 가운데는 시와 관계되는 서가 5편으로 그의 문학관을 알 수 있다.

이숭인은 유학자이면서도 삼교의 사상을 적절히 융섭·활용하는 사상적인 특징이 보인다. 그는 고려를 위해 충절을 다하다 정치적으로 희생되었지만, 그의 철학과 사상을 본받으려는 후대인들에 의해 이숭인의 차문화관(茶文化觀)은 조선조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조선 전기 다례문화(茶禮文化)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충절의 선비정신은 오늘날까지도 후학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도은집』은 이러한 이숭인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문학을 담은 귀중한 자료로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 권호신, 「영남문집해제-도은집(陶隱集)-」, 『민족문화논총』 제4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 김경미, 「도은 이숭인의 불교시 一考察」, 『한문고전연구』 제32집, 한국한문고전학회, 2016.
  • 김양선, 『陶隱 李崇仁의 茶文化觀 硏究』, 원광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