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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5:48 기준 최신판




총론

[1602년(선조 35)∼1682년(숙종 8) = 81세.] 조선 중기 광해군~숙종 때의 학자, 문신. 행직(行職)은 성균관 전적(典籍)이다. 자(字)는 퇴이(退而)이다. 일명 고봉래(高蓬萊)라고도 불리었다.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거주지도 제주이다. 아버지는 고정순(高定舜)이다.

현종 시대 활동

1666년(현종 7) 식년(式年) 문과의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65세였다.[<문과방목>] 성균관 전적(典籍)에 임명된 후, 귀향하였다. 제주목사(濟州牧使)이원진과 함께 『탐라지(耽羅志)』‧『고려사탐라사기(高麗史耽羅史記)』 등을 편찬하였다.

숙종 시대 활동

1682년(숙종 8) 죽었는데, 향년이 81세였다.

성품과 일화

1618년(광해군 10)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제주도로 귀양 온 간옹(艮翁)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명도암(明道菴) 김진용(金晉鎔)과 함께 공부를 하였는데, 사학과 지리학, 풍수지리에 뛰어났다. 효종 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진(李元鎭)의 소개로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고씨세록(高氏世祿)』
  • 『야촌집(野村集)』
  • 『증보 탐라지(增補 耽羅誌)』
  • 『탐라성주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