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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월) 15:4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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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심경부주 |
한글표제 | 심경부주 |
한자표제 | 心經附註 |
분야 | 경학주석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미상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진덕수 저, 정민정 주 |
간행처 | |
간행년일 | 미상 |
권책수 | 4권 2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표제 | 심경부주(心經附註) |
소장처 | 규장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심경부주(心經附註) |
이 책은 중국 송(宋)나라 때 학자인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에 명(明)나라의 정민정(程敏政)이 주(註)를 붙인 주석서다.
개설
이 책은 명나라의 정민정이 『심경』에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심경』은 본래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진덕수가 옛 성현의 심법(心法)이 표현된 경전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뽑아 모은 책이다. 이 유물에는 1566년(명종 21)에 조선의 학자 이황(李滉)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쓴 『심경후론(心經後論)』이 들어 있다.
이황이 평생토록 신봉(信奉)한 이 책은 그의 학문형성, 수양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황만큼이나 이 책을 신봉했던 사상가를 중국, 조선, 일본의 강호(江戶)시대를 통관(通觀)하여도, 다른 이를 찾아볼 수 없다.
편찬/발간 경위
명나라 황돈(篁墩) 정민정(程敏政)은 명대의 주자학파(朱子學派)인 설경헌(薛敬軒)과는 약 30년 뒤진 후배요, 육상산(陸象山) 계통인 진백사(陳白沙)와는 동시대의 인물이란 위치에 있었던 만큼 그는 주자학파이면서, 육상산(陸象山) 계통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이 까닭에 『심경』에 대한 '부주(附註)'에 있어서, 그도 역시 진덕수의 견해에 동조하며, 정주(程朱) 및 기타 심학자(心學者)들의 경(敬)에 대한 학설만을 특히 상세히 소개하여, 원주(原註)의 부족을 보충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심경의 말장(末章)인 주자(朱子)의 ‘존덕성재명(尊德性齋銘)’을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부주(附註)하였다.
정민정의 이 안어(按語)는 왕양명(王陽明)의 주자만년정론(朱子晩年定論)설의 선성(先聲)이라고 볼 수 있다. 왕양명(王陽明)은 주자의 집주(集註)·혹문(或問)류를 중년미정설(中年未定說)이라고 보고, 만년에 이르러서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존덕성(尊德性)을 중시하게 되어, 자기와 의견을 같이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자학파인 나정암(羅整菴)은 왕양명(王陽明)에게 장문의 반박서를 제출하여 이를 부인하였다. 이제 정민정은 주자학파이면서도, 이상(以上) 주자의 말을 정론(定論)이라고 하였으니, 육씨(陸氏)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서지 사항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쌍변이고, 반엽광곽은 20.8×15.5cm이다. 10행 20자의 유계, 상하내향화문어미(부동)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0×19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심경』은 ‘마음을 다스리는 글’이란 뜻으로 원래 남송(南宋) 시대 주자학파인 서산 진덕수가 사서(四書)와 삼경(三經), 주겸계(周濂溪), 정이천(程伊川), 범준(范浚), 주자의 글을 간략히 뽑아 만든 책인데, 명나라 초기의 성리학자인 황돈 정민정이 이에 관계되는 해석과 송유(宋儒)들의 학설을 더욱 발췌하고 보완하여, 『심경부주』라 이름을 지었다.
이 책은 원문의 해석은 물론이요, 주겸계와 정명도(程明道), 정이천, 장횡거(張橫渠)와 주자, 그리고 주자학파들의 수양론(修養論)을 대폭 수용하여, 『심경』을 환골탈태(換骨奪胎)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분량 또한 부주(附註)가 전체의 7, 8할을 차지한다.
본문의 구성을 살펴보면, 『서경(書經)』에서 1장, 『시경(詩經)』에서 2장, 『역경(易經)』에서 5장, 『예기(禮記)』 ‘악기(樂記)’에서 3장, 『대학(大學)』에서 2장, 『중용(中庸)』에서 2장, 『논어(論語)』에서 3장, 『맹자(孟子)』에서 12장, 주겸계(周濂溪)의 글에서 2장, 그리고 정이천의 ‘사물 잠(四勿箴)’, 범준의 ‘심잠(心箴)’, 주자의 ‘경재잠(敬齋箴)’, ‘구방심재명(求放心齋銘)’, ‘존덕성재명(尊德性齋銘)’ 등 총 37장으로 되어 있다. 주석은 본주(本註)와 부주(附註)로 나뉘는 바, 본주는 『심경』의 원저자인 진덕수와 그 문인들이 뽑은 것을 말하며, 부주는 정민정의 부주와 구별하기 위하여 이렇게 구분한 것이다.
조선조는 정주(程朱)의 성리학이 풍미한 시기였다. 소위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이이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 나온 뒤는 말할 나위도 없으며, 그 이전에도 정주학이 성행한 만큼 학자들의 심성이기(心性理氣)에 대한 연구는 대단하였다. 그만큼 이 책이 조선조 성리학에 끼친 영향 역시 지대하였다고 할 것이다.
의의와 평가
유학자에 있어서, 이 책은 심학의 연원(淵源)과 심학의 정미(精微)를 다하기 위한 초학입문서(初學入門書)임과 동시에 평생을 건 학문의 도달점이었으며, 여러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 古賀崇雅, 「退溪學と『心經附註』をめぐって」, 『퇴계학논집』 제20집, 퇴계학연구원, 2012.
- 신구현, 「退溪 李滉의 「心經附註」 硏究와 그의 心學의 特徵」, 『민족문화논총』 제8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7.
- 이상호, 「『心經附註』 해석사에서 바라본 정제두의 『心經集議』」, 『양명학』 통권 제19호, 한국양명학회, 2007.
- 홍원식, 「李滉과 그의 直傳 제자들의 『心經附註』 연구」, 『퇴계학논집』 제121집, 퇴계학연구원, 2007.
- 홍원식, 「퇴계 심학과 『심경부주(心經附註)』」, 『민족문화논총』 제30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