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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5일 (금) 14:19 기준 최신판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순종(純宗)이 사용한 연호(1907년~1910년).

개설

대한제국의 제 2대 황제인 순종이 사용한 연호이며, 동시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이기도 하다(1907년~1910년).

일본(日本)은 1905년 대한제국과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이에 고종(高宗) 황제는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조약 체결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일제와 친일 세력은 고종 황제에게 황위를 양위하도록 강요하였다. 결국 1907년 8월 12일 순종이 황제 자리에 올랐고, 동시에 연호도 융희(隆熙)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김인욱(金寅旭), 윤태상(尹泰相), 이우영(李宇永) 등 15명이 ‘유년기원법(踰年紀元法)’을 내세우며 전위(傳位)의 절차가 폐립이나 방축과 다를 바 없다고 반대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순종 황제가 황위에 올랐으나, 이미 대한제국의 실권은 일제와 친일 세력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1910년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기면서, 이 연호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순종실록(純宗實錄)』과 『순종실록부록(純宗實錄附錄)』에서 이 연호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순종실록(純宗實錄)』
  • 『순종실록부록(純宗實錄附錄)』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