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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5일 (금) 14:19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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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영락 |
한글표제 | 영락 |
한자표제 | 永樂 |
분야 | 연호 |
유형 | 연호 |
지역 | 중국(中國) |
시대 | 명(明) |
왕대 | 성조(成祖) |
집필자 | 김가람 |
사용지역 | 중국-명 |
사용왕대 | 성조 |
사용기간 | 1403년~1424년(성조1~성조22)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영락(永樂) |
중국(中國) 명(明)나라 성조(成祖) 대에 사용한 연호(1403년~1424년: 성조1~성조22).
그 외에
중국 전량(前涼) 장중화(張重華) 대에 사용한 연호(346년~353년: 장중화1~장중화8).
고구려(高句麗) 광개토왕(廣開土王) 대에 사용한 연호(391년~412년: 광개토왕1~광개토왕22).
개설
중국 명나라 제 3대 황제인 성조 대에 사용한 연호로(1403년~1424년), 성조는 연호인 영락(永樂)을 본 따 영락제(永樂帝) 또는 영락 황제(永樂皇帝)라고도 불린다.
조카 혜종(惠宗)의 제위를 찬탈하여 황제로 즉위한 성조는 영락 연간 동안 원나라의 잔당을 비롯하여, 여진족 · 베트남 등을 정복하며 명나라의 국경을 확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에도 깊게 관여하여 국가 교학으로서 주자학(朱子學)의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
한편 독자적인 연호 대신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였던 조선(朝鮮)에서는 태종(太宗)3년부터 세종(世宗)6년까지 이 연호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중국의 연호로 연대(年代)를 표시하면서 『조선왕조실록』에 영락 연호가 등장한다.
명나라 외에도 중국 전량의 제 5대 국왕인 장중화와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영락을 연호로 사용하였으나, 『조선왕조실록』에 이때의 영락 연호는 등장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명사(明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