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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일 (화) 23:55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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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냉천정 |
한글표제 | 냉천정 |
한자표제 | 冷泉亭 |
상위어 | 육상궁(毓祥宮), 진전(眞殿) |
관련어 | 성일헌(誠一軒), 어진(御眞), 장보각(藏譜閣), 창의궁(彰義宮) |
분야 | 왕실/왕실건축/궁궐건축물 |
유형 | 건축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후기 |
집필자 | 정정남 |
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칠궁 |
관련 인물 | 영조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냉천정(冷泉亭)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1년 12월 23일, 『순조실록』 11년 8월 11일, 『순조실록』 25년 4월 29일, 『고종실록』 3년 12월 20일, 『고종실록』 15년 10월 15일, 『순종실록』 1년 7월 23일 |
숙종의 후궁인 숙빈최씨의 육상궁 내에 있던 영조의 어진 봉안소.
개설
육상궁(毓祥宮)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제향을 위해 건립된 궁묘이다. 육상궁 내에는 제향과 궁방전(宮房田)의 관리를 위한 건물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영조의 어진(御眞)을 봉안하기 위해 사용된 건물이 냉천정(冷泉亭)이다. 궁궐 밖에 영조의 어진을 봉안하던 곳으로는 창의궁(彰義宮)의 장보각(藏譜閣)이 있지만 순조대에는 육상궁의 냉천정에도 봉안하기 시작했다. 1908년(순종 1)에 냉천정에 봉안하던 영조의 어진을 선원전(璿源殿)으로 옮기면서 냉천정의 어진 봉안소 기능은 상실되었다. 현재 냉천정 건물은 칠궁 내에 남아 있다.
위치 및 용도
냉천정은 육상궁 내에 있던 영조의 어진 봉안소이다. 육상궁은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 있었는데, 현재의 행정 구역으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이다.
변천 및 현황
육상궁은 영조의 사친(私親)인 숙빈최씨에게 제사 지내던 곳으로 1725년(영조 1)에 완성되었다(『영조실록』 1년 12월 23일). 영조는 재위 기간 중에 자주 육상궁에 전배(展拜)하며 효성을 드러냈다.
이 육상궁 내에 영조의 어진을 봉안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809년(순조 9)에 처음으로 순조가 냉천정에 사배례(四拜禮)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 즈음부터 냉천정에 어진을 봉안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순조는 냉천정에 어진을 봉안하고 별분향(別焚香)을 위하여 향을 전하기도 하고, 건물을 수시로 살펴서 개수하기도 했다(『순조실록』 11년 8월 11일)(『순조실록』 25년 4월 29일).
1866년(고종 3)에 창의궁 장보각에서 화재가 일어나자 영조의 어진을 의정부(議政府)에 옮겨 봉안했다가 같은 날 냉천정으로 옮겼다(『고종실록』 3년 12월 20일). 1882년(고종 19)에는 육상궁에서 화재가 발생해 냉천정의 어진을 송죽정(松竹亭)으로 옮겨 봉안했다가 개수한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고종실록』 15년 10월 15일).
냉천정에 봉안하던 영조의 어진은 1908년에 국가의 제사 제도를 정리하면서 선원전으로 옮겼다. 이로써 냉천정의 어진 봉안소 기능은 막을 내렸다(『순종실록』 1년 7월 23일). 육상궁 내에 선희궁(宣禧宮)·연호궁(延祜宮)·저경궁(儲慶宮)·대빈궁(大賓宮)·경우궁(景祐宮)·덕안궁(德安宮)이 합사(合祀)되어 칠궁(七宮)이라 불리며 냉천정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형태
현재 남아 있는 냉천정은 좌우 퇴가 있는 정면 3칸, 전면 퇴가 있는 측면 1칸 규모의 건물이다. 좌측 2칸은 온돌방이며 측면의 퇴는 상부에 다락을 두고 아래쪽에 함실아궁이를 시설했다. 우측 1칸 반은 마루를 깔고, 후면과 측면에는 만살청판창[滿箭廳板窓戶]을, 전면에는 세살청판창을 달았다. 전면 퇴에는 모두 마루를 깔고 풍혈(風穴)이 있는 난간을 둘렀으며, 지붕은 기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 좌우 끝에 용두를 올려 격식을 높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내각일력(內閣日曆)』
- 『대동지지(大東地志)』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