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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41 기준 최신판




총론

[?~? = ?]. 조선의 13대 왕인 명종(明宗)의 후궁.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신언숙(申彥淑)으로 강서현령(江西縣令)을 지냈고, 어머니 해주 최씨(海州崔氏)는 최응(崔凝)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오위부사직(五衛副司直)을 지낸 신수붕(申壽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이조 참의(參議)에 추증된 신승민(申承閔)이다.

명종의 후궁

신숙의(申淑儀)가 궐에 들어온 때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기사로 그 시기가 추정된다. 1548년(명종 3) 숙의의 입궁을 위해 그 아버지인 신언숙에게 6품을 제수하라는 기사와(『명종실록』 3년 12월 21일) 1551년(명종 6) 신숙의가 입궁한지 3년이 되었으나 자식이 없다는 기사이다.(『명종실록』 6년 2월 25일) 이를 통해 신숙의는 1548년(명종 3) 궁에 들어와 숙의의 첩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1562년(명종 17) 신숙의의 옆집에 살던 윤홍중(尹弘中)이 담장 문제로 신숙의의 집 여종을 매질한 일이 일어나자 신숙의가 이를 명종에게 호소해 윤홍중이 강진으로 유배를 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에 대해 사관들은 윤홍중이 본래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 유배를 간 것이 애석한 것은 아니지만, 왕이 후궁의 사사로운 사건에 관여하여 조정의 선비를 유배를 보낸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보였다.(『명종실록』 17년 4월 12일)

묘소와 후손

신숙의의 무덤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신숙의는 명종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두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지두환, 『명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