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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21 기준 최신판



『세종실록』의 부록격으로 간행된 국가 의례를 집대성한 책.

개설

조선시대 국가 운영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오례(五禮)에 대한 의식과 그 진행절차를 정리하여 『세종실록』의 부록으로 수록한 책. 이후 조선의 유교화 확립에 기초가 되었으며 성종(成宗) 때에 제작 완료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저본이 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1452년(문종 즉위년)에 『고려사(高麗史)』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다수의 인원이 『세종실록』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다. 『세종실록』 간행 중 세종 때 집현전(集賢殿)에 명하여 『오례의주(五禮儀註)』를 정리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이 작업의 결과를 『세종실록』에 수록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약간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단종실록』 즉위년 9월 13일) 다른 지들과는 달리 의정부의 검토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종실록』의 부록으로 수록할 수 없다는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 때문에 『세종실록오례의(世宗實錄五禮儀)』의 내용이 편년체 서술 속에 들어갈 수도 있었으나, 이 결정이 번복되어 결국 1454년(단종 2)에 『세종실록』이 완성되었을 때에 부록 중 가장 앞머리에 수록되었다. 수록될 내용 자체는 1451년에 이미 완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세종실록오례의』 서문]

서지 사항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의 권128부터 권135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각종 지 중에 가장 앞머리에 위치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가기록원 부산 역사기록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유교 국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의례를 정리한 것으로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가 포함되었다. 중국(당·송·명)의 제도를 참고하여 태종(太宗) 때부터 시작되었던 각종 의례의 정비가 정리되어 있다. 전체 구성은 각 예 부문의 예식에 필요한 구체적인 인원, 장비, 물품과 그것을 시행하는 장소, 시간 등을 정한 서례(序例)와 각 부문의 예식의 진행 절차를 설명한 의식(儀式) 부문으로 구성되었다. 흉례의 의식이 46개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이 44개의 가례, 35개의 길례 순이다. 빈례와 군례는 각각 6개와 8개로 상대적으로 적다. 애초에 관례(冠禮)도 포함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달성하지 못하여 빠졌다.

각 권의 수록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권은 서문 및 길례의 서례, 2권은 길례 의식에 대한 부분이다. 3, 4권은 길례 의식에 대한 부분, 5권은 가례 서례와 의식, 6권은 가례 의식, 빈례 및 군례의 서례 및 의식, 7권은 흉례 서례와 의식, 8권은 흉례 의식이다. 책의 특성상 각종 배치도나 복장, 장비가 그림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세종실록』과는 달리 필사본으로 작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세종실록』은 여타 실록과는 달리 여러 가지 지(誌)를 부록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세종 때 진행되었던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정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고려의 역사를 기전체(紀傳體)로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하기도 한다.

건국 이후 완전히 정비되지 못했던 조선의 국가 의례를 정비 및 통일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다만 세종 때 진행되었던 길례의 개정 사항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비롯한 각종 정치적 사안에 의해 반영되지 않았던 한계가 있다. 이는 1474년 성종 때 간행된 『국조오례의』가 『세종실록오례의』를 바탕으로 완성됨에 따라 보완되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
  • 『단종실록』
  • 강제훈, 「조선 『세종실록』『오례』의 편찬 경위와 성격」, 『사학연구』 107,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