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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21 기준 최신판



중국 남송의 주희(朱熹)가 이학(理學)의 연원과 역사를 기술한 책.

개설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은 주희(朱熹)가 지은 책으로 1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송(宋) 효종(孝宗)건도(乾道) 9년(1173)에 책으로 만들어졌다. 통행본으로는 원(元) 지정(至正) 계미년(癸未年: 1343)본, 명나라 홍치(弘治) 13년(1500) 성도(成都) 지고당(志古堂) 판본이 있는데, 이 판본은 명나라 양렴(楊廉)이 주희의 저술 속에서 이락(伊洛) 연원(淵源)에 관한 자료를 편집 증보하였기 때문에 양렴(楊廉) 신증본(新增本)이라 한다. 또한 명나라 가정(嘉靖) 을축년(乙丑年: 1563) 판본이 있으며 청나라 정의당(正誼堂) 전서(全書) 판본, 청나라 『주자유서(朱子遺書)』본, 일본경안(慶安) 2년(1649) 풍월장(風月莊) 좌위문(左衛門)본, 마지막으로 1983년 중주(中州) 고적출판사의 교점본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편찬 동기는 주희의 『답여백공서(答呂伯恭書)』에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선현(先賢)의 사적들이 일몰되어, 전해지지 않아 문집을 모으고, 찾아내어 성학(聖學)의 도를 번성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는 낙양을 거처 흐르는데,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는 낙양사람이다. 이 책의 이름을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이라 한 것은, 이정(二程)의 급문(及門) 제자들의 학술사상을 드러내어 이학(理學)의 정종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서지 사항

14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35.6cm 가로 23.1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이학(理學) 발전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보존하고 있어, 많은 문헌들을 보충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원사(元史)』의 「도학전(道學傳)」, 「유림전(儒林傳)」은 이 책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또한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은 명청대 학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주여등(周汝登)의 『성학종전(聖學宗傳)』, 손기봉(孫奇逢)의 『이학종전(理學宗傳)』은 모두 이 책을 모방하여, 이루어진 것들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송나라 사람이 도학의 종파를 이야기 한 것은 이 책에서 시작되었으며, 송나라 사람이 도학의 문호(門戶)를 나눈 것도 이 책에서 시작한다(蓋宋人談道學宗派自此書始 而宋人分道學門户亦自此書始)”고 평가했다.

『이락연원록』은 1173년에 만들어졌는데, 송대의 도학자 주돈이[濂溪]‚ 소옹[康節]‚ 장재[橫渠]‚ 정호[明道], 정이[伊川]를 비롯하여, 양시[龜山]‚ 사량좌[上蔡]‚ 유작산(游酢山)‚ 여염전(呂藍田) 등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 그리고 범조우(范祖禹)‚ 오희철(呂希哲)‚ 호안국(胡安國) 등 그의 교유(交遊)‚ 문제(門弟)들에 이르는 46인의 언행을 기록하여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에서 강학했던 정명도‚ 정이천 형제의 도통(道通)을 드러내고, 송대 도학의 연원과 전승을 밝히어 놓았다.

주희는 각 사람들의 사장(事狀)‚ 행장(行狀)‚ 연보(年譜)‚ 묘지명(墓地銘) 등의 문헌을 첨부하여, 그들의 생애를 서술하고 유사(遺事) 수편(數編)도 붙이고 있다. 주희가 『이락연원록』을 지을 때는 자료를 충분히 선별했지만, 여희철(呂希哲)이 불교를 배웠던 것과 여대충(呂大忠)‚ 여대균(呂大鈞)의 일은 싣지 말아야 했으나 실었고‚ 사서(邢恕)같이 만년에 선(禪)으로 향하고, 정자(程子)를 배척한 이를 수록하는 등 미진한 곳이 남아있어, 주희는 이를 개정하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연원록의 기재 내용에 관해서는 주희의 「답려백공론연원록(答呂伯恭論淵源錄)」에 자세하다. 『이락연원속록』 6권은 1480년(성화(成化) 16년) 사탁(謝鐸)이 자서(自序)를 첨부하여 간행했다. 사탁에 의하면 주희의 『이락연원록』은 제현의 학문이 모두 언행일치‚ 체용일원(體用一源)한 점을 잘 알려주어, 주희 사후에도 육경사서(六經四書)에 산견하는 제현의 유언‚ 서론(緖論)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접하여 알 수 있지만‚ 그 학문의 사우간의 전수와 출처이력에 관한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주희의 전체대용의 학을 온전히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속록(續錄)』을 편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송사(宋史)』「도학전(道學傳)」과 『송사』 유림전(儒林傳)을 기본으로 발췌하여 이 책을 지었는데, 주희를 중심으로 나종언(羅從彦)‚ 이통 및 주희의 강우(講友)인 장식(張栻)‚ 여조겸(呂祖謙)‚ 황간(黃榦)을 비롯한 14인의 문인‚ 사숙문인(私淑門人) 진덕수(眞德秀)‚ 황간의 문인 하기(何基)‚ 하기의 문인 왕백 등 모두 21인의 언행을 수록하였다.

1496년(홍치(弘治))에 양렴(楊廉)은 주희가 『이락연원록』을 개정하고자 했던 뜻을 이어, 이 책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 다시 주희의 문집과 어록 중에서 이락(伊洛)의 제현과 관련된 사적(事蹟)을 발췌하여, 자서(自序)와 황충소(黃仲昭)의 서를 첨부하여, 『이락연원록신증』을 편찬하였다. 양렴이 증보한 것은 거의가 제현에 대한 주희의 평어(評語)이다. 양렴의 『이락연원록신증』과 사탁이 찬한 『이락연원속록』은 1529년(가정(嘉靖) 8년)에 고귀형(高貴亨)이 합본하여 출간하였다. 그 후 이 책은 귀암(龜巖)이정(李楨)에 의해 조선에서 간행되었는데, 이 책의 간행 경위에 대해서는 이황의 발문에 상세하다.

이 책은 이른바 이학(理學)‚ 도학(道學)이라는 특수한 제약은 있지만, 중국에 있어 철학사‚ 사상사의 효시로서 높이 평가 후세의 『연원록』이라는 명칭이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은 도학자 사이에서 존중되었고 『송사』의 도학‚ 유림전(儒林傳) 등에 관한 전기는 대부분 이 책에 의거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송대(宋代) 이학(理學)의 원류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중국에서 비교적 오래된 학술 사상사를 기술한 전문도서이다. 수록한 것은 사장(事狀), 행장(行狀), 연보(年譜), 주장(奏狀), 일사장(逸士狀), 묘지명(墓誌銘), 제문(祭文), 묘표(墓表), 찬(贊), 시(詩), 애사(哀詞), 문인(門人)들 사이의 편지 그리고 각종 전문(傳聞) 잡기(雜記)들이다. 이러한 집록 속에서 이들의 생애나 인품 그리고 언행들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林保全, 「南宋學者對北宋理學社群之建構-以朱熹《伊洛淵源錄》為觀察核心」, 『東華人文學報』, 東華大學人文社會科學學院, 2013.
  • 조기원, 「주자의 복서역학 연구」, 대전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 최채기, 「한국에서의 주자문집 수용방식」, 『서지학연구』 제60집, 한국서지학회, 2014.
  • 허정화, 「주희와 그의 미학사상」, 산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