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운략(禮部韻略)"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차이 없음)

2017년 12월 22일 (금) 01:19 기준 최신판



중국 송(宋)나라 때 정도(丁度)가 지은 운서(韻書).

개설

『예부운략(禮部韻略)』은 중국 송(宋)나라 정도(丁度)가 지은 운서(韻書)다.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이라고도 한다.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은 1037년(고려, 단종 3) 정도(丁度, 990∼1053)가 왕명을 받들어, 『집운(集韻)』을 편수함과 동시에 『집운』의 ‘간정착운십삼처(刊定窄韻十三處)’에 의거하여, 『경덕운략(景德韻略)』을 『예부운략(禮部韻略)』으로 고친 책이다. 이 책은 과거시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 때부터 수입· 간행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청도(淸道), 영동(永同), 울산(蔚山) 등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제책(製冊)은 오침안 선장본(五針眼線裝本)이고 표지제와 판심제는 ‘예부운(禮部韻)’이며, 권수제는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이다. 변란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본문에는 계선이 있다. 행자수는 10행 18자이고 주는 쌍행이며 어미의 형태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 혹은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가 혼재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부터 애용되었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이 『예부운략』의 체재만을 개편한 『삼운통고(三韻通考)』, 여기에 중국 자음(字音)과 한국 자음을 한글로 표기한 『화동정음통석운고(華東正音通釋韻考)』(1747)가 생겨날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다. 국내판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천순(天順) 갑신(甲申)(世祖 10, 1464)의 간기를 가진 복각본이다. 이 복각본에 있는 ‘대덕경자(大德庚子; 고려 충렬(忠烈) 26, 1300)는 원판(元版)의 것이다.

이 밖에 중종 19년(1524)을 위시하여, 많은 중간본들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옥편(玉篇)을 덧붙여, 『신간배자예부운략옥편(新刊排字禮部韻略玉篇)』이라고 한 책도 있다. 예부(禮部)의 과시(科試)를 위하여 간행된 운서로 운자(韻字)를 사성(四聲)의 순서대로 적은 사전식 분류서이다. 현재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지 사항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9.7cm, 가로 19.7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예부운략(禮部韻略)』은 당초 『경덕운략(景德韻略)』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송(宋)경덕(景德) 4년(1007)에 만들어졌다. 그 후 경우(景祐) 4년(1037)에 정도(丁度)‚ 이숙(李淑) 등이 왕명을 받들어 『집운(集韻)』을 편수함과 동시에 『집운(集韻)』의 「간정착운십삼처(刊定窄韻十三處)」의 예에 의거하여, 『경덕운략(景德韻略)』을 『예부운략(禮部韻略)』으로 고쳐, 그 해에 완성하였다. 이는 예부(禮部)에서 관장하던 과거시험을 위해 만들어진 관운(官韻)이었으며‚ 『광운(廣韻)』을 간략히 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에부운략(禮部韻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은 모두 206운(韻)으로 『광운(廣韻)』에 나타난 어음계통과 대체로 일치하며, 수록된 글자의 수는 9‚590字로 『광운(廣韻)』보다 훨씬 적고, 주석도 『광운(廣韻)』보다 간결하여, 상용의미 혹은 기본의미만을 채택하였으며‚ 보편적인 상용글자에는 아무런 주석도 하지 않았다.

『예부운략(禮部韻略)』의 수정본으로는 『부석문호주예부운략(附釋文互注禮部韻略)』이 있는데, 모두 5권으로 저자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여러 명이 편찬한 관서(官書)로 추정되며‚ 현재 청(淸) 조인각본(曹寅刻本)과 상무인서관 사부총간 영인 철금동검루 장본((商務印書館 四部叢刊 影印 鐵琴銅劍樓 藏本)이 있다. 이 책은 각 글자에 먼저 ‘관주(官注)’를 들고 있는데, 이는 대체로 널리 쓰이던 의미로 시험관과 응시생이 모두 표준으로 삼았다. ‘관주(官注’ 뒤에는 석문(釋文)을 들고 있는데, 대체로 ‘관주’에 대한 세부주석이나 보충설명에 해당한다. 또 모황부자(毛晃父子)의 『증수호주예부운략(增修互注禮部韻略)』은 송나라 고종(高宗)소흥(紹興) 32년(1162)에 표(表)로 진상되었으므로, 이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수정작업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증자(增字); 모황(毛晃)은 2655자를 증자(增字)했으며, 모거정(毛居正)은 1402자를 증자했다. 둘째‚ 동그라미 표시의 증가; 『예부운략(禮部韻略)』은 어떤 글자가 다른 글자체나 다른 음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글자의 주변에 동그라미를 쳐서 표시를 하였는데, 모황은 1690자에 동그라미 표시를 더 첨가했다. 셋째‚ 글자의 정정(訂正); 글자체를 정정한 곳이 485항에 이른다. 넷째‚ 주석의 수정(修訂); 모씨 부자가 수정을 가한 주석은 후대에 높이 평가를 받아, 유연(劉淵)의 『임자신간예부운략(壬子新刊禮部韻略)』‚ 송렴(宋濂)등의 『홍무정운(洪武正韻)』이 모황부자의 책을 주요 참고자료로 삼았다.

이외에도‚ 송순우 임자년 간(1252)에 강북평수인(江北平水人) 유연(劉淵)이 쓴 『임자신간예부운략(壬子新刊禮部韻略』이 있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고, 원(元)웅충(熊忠)의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에 기재되어 있어 이 책의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예부운략(禮部韻略)』의 동용례(同用例)를 합해 107운으로 운을 합병하였고‚ 둘째 『증수오주예부운략(增修互注禮部韻略)』의 기초 하에 약간의 증자를 하였으며‚ 셋째 주석은 기본적으로 『증수오주예부운략(增修互注禮部韻略)』을 이용하였다. 원(元)음시부(陰時夫)의 『운부군옥(韻部群玉』은 유연의 체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나, 상성(上聲)의 ‘형(逈)’운과 ‘증(拯)’운을 하나로 합쳐, 106운으로 분류하였다.

참고문헌

  • 유창균, 「선암서원장판 예부운략에 대하여」, 『한국학논집』 제7집,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2.
  • 조희무, 「『예부운략 (禮部韻略)』 연구 2-운모를 중심으로」, 『동북아연구』 14권,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05.
  • 조희무, 「《예부운략》연구: 성모를 중심으로」, 『생활지도연구』 20호, 조선대학교학생생활연구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