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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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19 기준 최신판



1518년(중종 13) 조신(曺伸)이 유교의 기본 윤리인 오륜(五倫) 중에 이륜(二倫)인 장유유서(長幼有序)와 붕우유신(朋友有信)을 널리 가르치기 위하여 편찬한 책.

개설

이 책은 오륜 가운데 장유유서와 붕우유신의 이륜을 널리 가르치기 위하여, 중국의 역대 문헌에서 이륜의 행실이 뛰어난 인물을 뽑아, 그 인물의 사적(事蹟)을 찬시(讚詩)와 더불어 엮은 교화서이다. 사적은 모두 중국 사람의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의 사적은 실려 있지 않다. 다른 교화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사적마다 언해를 붙이고(단 시는 언해되지 않았다), 사적 내용이 요약된 도판(圖版)을 사적 앞에 실어 이해를 도왔는데, 이 때문에 서명에 ‘도(圖)’가 포함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는 1516년(중종 11) 김안국(金安國)의 간행 건의를 중종이 받아들임에 따라 왕명(王命)으로 그 편찬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왕명이 채 시행되기 전인 1517년(중종 12) 김안국이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나아가게 되자, 전 사역원(司譯院) 정(正)조신이 편찬을 담당하게 되면서, 이듬해인 1518년(중종 13) 경상도 금산(金山 : 현재의 金泉)에서 간행을 하였다.(『중종실록』 33년 7월 7일)

이 책의 찬술 동기는 유교의 기본 윤리인 오륜 중에서 장유유서와 붕우유신의 이륜을 민간에 널리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지만, 편찬된 시기의 사회적 배경을 통해서도 편찬 동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간행 연도는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기 바로 전 해로, 조광조(趙光祖)의 혁신정치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무렵이다. 당시 중종(中宗)은 조광조 등의 신진사류로 하여금 연산군(燕山君)에 의해서 극도로 문란해진 정치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전통적인 유교정치를 회복하게 하였다. 또한 촌락 집단의 상호부조를 위하여 이른바 향약(鄕約)을 처음으로 전국에 시행하게 했으며, 민중생활에서도 윤리적인 규범을 확립해 나갔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조광조와 함께 지치주의(至致主義)를 주장했던 김안국이 백성의 교화를 위해서 『이륜행실도』를 간행할 것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서지 사항

총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본이다. 세로 36.7cm, 가로 21.9cm이고, 지질은 한지이다.

현재 원간본은 옥산서원(玉山書院)의 독락당(獨樂堂)과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복간본과 개간본도 전해지고 있는데, 복간본은 일본 도쿄의 내각문고에 소장되어 있으며, 개간본은 1579년(선조 12) 교서관(校書館)에서 개간한 것으로, 판식(版式)은 초간본과 대체로 같으나 표기법과 언어·사실 등은 차이가 난다. 이 책은 현재 경상북도 예천군학봉(鶴峰)김성일(金誠一)의 종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도 중간본으로 1727년(영조 3)과 1730년(영조 6)에 각각 평양·경상·강원 감영의 개간본이 간행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규장각에 있다. 중간본에는 강혼(姜渾)의 서(序)와 박문수(朴文秀)의 발(跋)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 책의 중간이 여러 차례 이루어진 것은 왕조시대에 윤리 진작을 위한 조정의 권면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본문의 각 장은 전면이 도판으로, 도판 상단의 여백에 언해가 실려 있고, 후면에는 한문으로 된 행적기록과 시찬(詩贊)이 있다. 장유유서와 붕우유신의 행실이 뛰어난 역대 명현의 행적을 가려 뽑아 형제도(兄弟圖)에는 종족도(宗族圖)를, 붕우도(朋友圖)에는 사생도(師生圖)를 첨가하였다. 형제도에 25명, 종족도에 7명, 붕우도에 11명, 사생도에 5명 등 모두 48명의 명현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중국인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은 한 명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륜행실도』는 원간본과 여러 중간본이 현존하고 있다. 원간본에는 방점과 ‘ㆁ’이 나타나고, 혼란스럽기는 하나 ‘ㅿ’도 나타나는데, ‘니르-(讀)’, ‘글니르더니’나 ‘즈우리-(趨出)’처럼 경상도 방언을 반영한 어휘들도 발견된다. 또한 ‘후에(後)’가 축약되어 ‘훼(後)’로 나타나는데, 이것 역시 방언형으로 보인다. 표기상으로는 ‘믈레(水), 사름미라(人)’와 같은 중철 표기가 특징적인데, 이들은 중간본에서는 연철 표기 ‘므레, 사미라’로 바뀌었다. 또한 15세기 문헌에서 ‘써(書), 싸와(鬪)’로 표기되었던 단어들의 어두 자음이 평음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밖에도 ‘그듸’에 호응하는 종결 평서법의 ‘-ㆁ다’, 명령법의 ‘-엇셔, -야셔’, 존경법의 ‘-샤’가 ‘-셔’로 나타나는 점, 유소(幼少)를 뜻하는 어간이 ‘졀머든’으로 나타나는 점 등은 원간본의 특이한 언어 사실이다.

여러 중간본들 가운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간본으로 1727년(영조 3) 평안도에서 간행된 것으로 권말에 ‘정미년(1727년) 4월 기영(평양감영)에서 간행하다.(丁未四月日箕營開刊)’란 간기가 있다. 이 책은 18세기 간본이기 때문에 원간본의 방점, ‘ㆁ’과 ‘ㅿ’이 나타나지 않으며, 어휘에 있어서도 상당히 다르다. 원간본의 ‘니르-’와 ‘주우(으)리-’에 대하여 ‘글닑너니’와 ‘라나오니’와 같은 단어가 쓰인 것은 방언적 차이에 기인한 듯하며, 원간본의 ‘마(旣)’에 대하여 ‘셔’가 쓰인 것은 사적인 변화에 기인한 듯하다. 한편 언해 내용에 있어서도 원간본에 비하여 원문에 보다 충실한 번역을 하고 있다.

이밖에 복각본 가운데 일본 도쿄의 내각문고본은 원간본과 표기법이나 언어 사실 등이 대체로 일치하나, 삽화와 어미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전면의 언해에 방점이 없는 점 등이 다르다.

개간본은 책의 크기와 반곽 등이 달라지고, 판심이 삼엽 화문어미로 달라진 점을 제외하면, 판식은 원간본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표기법과 언어 사실 등은 상당히 다르다. 방점과 ‘ㅿ’이 없으며 ‘ㆁ’도 종성 표기에만 쓰이고 있다. 본문 내용에 있어서도 번역이 원문에 가까워졌고 원간본의 조사 ‘-’는 모두 ‘-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원간본에 ‘닫티사라로다’로 되어 있는 것이 여기서는 ‘닫티사라야리로다’로 쓰여 있다.

『이륜행실도』의 또 다른 이본으로는 1730년(영조 6)의 각도 감영판은 1727년 평안도에서 간행한 중간본을 판하로 한 복각본들이라 생각되는데, 실지로 강원도 감영판의 경우 목록 부분을 제외하면 1727년판의 충실한 복각으로서 구개음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1727년판에 나타난 평안도 방언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경상도 감영판에는 구개음화의 예가 나타나는 등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말리지못야, 가지말라야, 도기이러나’ 등에 나타난다. 끝으로 간기를 알 수 없는 후대본이 전하는데 현재 가람문고본으로 되어 있는 바, 이 책에는 구개음화가 ‘어지다(賢), 가지말라’처럼 됨은 물론 원순 모음화가 ‘져무도록, 문득’에서처럼 나타나고, 분철 표기도 ‘음식이, 셩인의’에서 나타나서 18세기 후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여러 차례 중간이 이루어진 『이륜행실도』에 실려 있는 도판 및 언해는 조선시대 판화(版畵)의 변천 및 국어사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유학사상 및 윤리관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김영배, 「『이륜행실도』의 원간본과 중간본 비교」, 『동방학지』71, 연세대, 1991.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연구소, 1996.
  • 안병희,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해제」, 『동양학총서』6, 1978.
  • 이은정, 「『이륜행실도』의 어휘 고찰」, 『한국어 의미학』, 한국어의미학회, 2000.
  •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