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직설(農事直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XML 가져오기) |
(차이 없음)
|
2017년 12월 22일 (금) 01:17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농사직설 |
한글표제 | 농사직설 |
한자표제 | 農事直設 |
분야 | 농업 |
유형 | 문헌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세종 |
집필자 | 정일영 |
저편자 | 정초(鄭招), 변효문(卞孝文) 등 |
간행년일 | 1429년(세종 11) |
권책수 | 1책 |
사용활자 | 목판 |
표제 | 농사직설(農事直設) |
소장처 |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국립중앙도서관, 공무원교육원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농사직설(農事直設)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1년 5월 16일, 『세종실록』 12년 2월 14일 |
조선 전기인 1429년(세종 11) 세종(世宗)대에 간행된 농서(農書).
개설
조선의 실정에 맞는 농업 기술을 일반 백성들에게 소개하여 당시 국가의 중요한 기간이었던 농업을 발전시키려는 의도 하에 간행된 농업기술 서적이다. 1책으로 되어 있으며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국립중앙도서관, 공무원교육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1429년(세종 11)에 간행하였다. 각 지방의 풍토가 다르고 또 경작할 수 있는 농작물도 다르며 옛 책에만 의존할 수가 없다 하여 각 도의 관찰사에게 명하여 경험 많은 농부들에게 물어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 총제(摠制)정초(鄭招)와 종부시(宗簿寺) 소윤(少尹)변효문(卞孝文) 등에게 명하여 편찬하게 하였다. 이때 수집한 정보들은 직접 시험하여 확인하기도 했다고 한다.[『국조보감(國朝寶鑑)』] 세종 때에 간행되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시작은 태종(太宗)대로 거슬러 올라가 약 15년에 걸친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농사직설(農事直說)』의 서(序)에 언급되어 있듯이, 태종대에 이미 농서 간행이 진행되었고, 거기에 세종(世宗)대에 각 지역의 풍토를 확인하고 각 지방별 농업 관행을 조사하였던 것이다.(『세종실록』 11년 5월 16일) 우선은 중국의 농서인 『농상집요(農桑輯要)』를 번역하고 편집하여 책을 간행하였고, 세종이 다시 이를 바탕으로 직접 조사한 자료를 활용하여 『농사직설』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농사직설』이 처음부터 전국적인 농서로 사용하기 위해 편찬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처음에는 평안도와 함길도 지역의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강구되었지만 전품(田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보급하려 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즉, 선진 농업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하삼도(下三道;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기술을 북방지역까지 전파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행된 『농사직설』은 이듬해(세종 12) 각 도의 감사와 주, 군, 부, 현, 서울 내의 시직(時職)과 산직(散職) 2품 이상 관원에게 반포되었다.(『세종실록』 12년 2월 14일)
서지 사항
『농사직설』은 목판본으로 1책 40장으로 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서울시립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공무원교육원 등에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판본은 필사본과 18세기에 중간한 판본이다. 『고사촬요(攷事撮要)』에 의하면 전라도 전주와 무장에 『농사직설』 책판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존하지는 않는다. 각 판본별로 정초가 작성한 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은 서가 없으며 『금양잡록(衿陽雜錄)』과 합본의 형태로 선조대에 합철(合綴)된 판본이다.
구성/내용
한 장본 12엽(葉)으로 되어있다. 구체적으로는 서가 2엽, 본문 9엽, 자음의(字音義) 1엽이다. 서문에는 『농사직설』을 간행한 의도를 밝히고 있다. 본문에서는 종자를 고르는 법과 9가지 곡식을 재배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특히 각 작물에 대해 땅을 가는 법부터 시작하여 파종, 시비, 제초, 수확에 대한 설명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만 하다.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교본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책의 내용이 구성된 것이다.
본문의 순서와 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비곡종(備穀種). 다음 해에 파종할 종자를 준비하는 법이다. 알맞은 곡식을 고르고 씨를 물에 담가 준비하는 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2. 경지(耕地). 파종하기 전에 경작지를 갈아 일구는 방법이다. 땅을 가는 기본 방법은 물론이고 시비법(施肥法), 소를 모는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3. 종마(種麻). 마를 심는 방법에 대한 부분이다. 4. 종도(種稻). 벼를 심는 방법이다. 파종부터 시작하여 제초하는 법, 시비법까지 소개하였다. 특히 벼를 재배하는 4가지 농법이 소개된 점이 특기할만 하다. 5. 종서속(種黍粟). 기장과 조를 재배하는 방법이다. 6. 종직(種稷). 파를 심고 재배하는 방법이다. 7. 종대두소두녹두(種大斗小斗菉豆). 콩과 더불어 팥의 재배법을 설명하였다. 8. 종대소맥(種大小麥). 보리와 밀의 재배법을 설명하였다. 9. 종호마(種胡麻). 깨를 심고 기르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10. 종고맥(種蒿麥). 메밀의 재배법을 기술하였다. 자음의는 본문에 나오는 특이한 명사, 곡물명과 농업에 관련된 한문에 음과 뜻을 자세하게 정리하여 혼돈을 막았다.
의의와 평가
중국에서 수입된 농사 관련 서적을 번역만 하여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풍토에 맞는 농법을 실제 농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 조선에서 간행한 농서의 기본 자료가 되었다는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농사직설》은 당대의 농업 기술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기록을 통하여 15세기에 들어 조선이 중국의 농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실정에 맞는 농업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국조보감(國朝寶鑑)』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료실(http://e-kyujanggak.snu.ac.kr)
- 김상태, 「『농사직설』의 편찬과 보급에 대한 재검토」, 「한국민족문화」 36,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0.
- 김용섭, 「농사직설의 편찬과 기술」, 『애산학보』 4, 애산학회, 1986.
- 이선아·소순열, 「조선시대 농서의 지역적 간행의 의의 - 『농사직설』과 『농가집성』을 중심으로」, 『농업사연구』 5-1, 한국농업사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