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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17 기준 최신판
| 주요 정보 | |
|---|---|
| 대표표제 | 논어 |
| 한글표제 | 논어 |
| 한자표제 | 論語 |
| 분야 | 철학 |
| 유형 | 문헌 |
| 지역 | 한국 |
| 시대 | 조선 |
| 왕대 | 세종 |
| 집필자 | 성낙수 |
| 저편자 | 공자(孔子) |
| 간행년일 | 1440년(세종 22) |
| 권책수 | 10권 4책 |
| 소장처 |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 논어(論語) | |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
개설
『논어(論語)』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이다. 저자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의 제자들과 그 문인들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일관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생애 전체에 걸친 언행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여타의 경전들과는 달리 격언이나 금언을 모아 놓은 듯한 성격을 띤다. 공자가 제자 및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한 것이 ‘논(論)’, 제자들에게 전해준 가르침을 ‘어(語)’라고 부른다.
현재 논어는 전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서술방식과 호칭의 차이 등을 기준으로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하여, 앞의 열 편이 더 이전 시대에 서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각 편의 이름은 그 편 내용의 첫 두 글자를 딴 것으로 특별한 뜻은 없다.
편찬/발간 경위
『논어』는 공자의 삶과 행동 및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널리 읽혀온 책이다. 누가 언제 이 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지만 『논어』의 내용을 볼 때 공자가 죽은 뒤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과 행적을 더듬고, 자신들의 얘기를 첨가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대부분 교육에 종사했는데, 이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스승의 말을 기록한 죽간(竹簡) 등을 나중에 모아 편찬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종 정리는 공자의 가장 나이 어린 제자였던 증삼(曾參)의 제자들이 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를 정리하면 처음에는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중궁(仲弓), 자유(子游), 자하(子夏) 등의 제자가 주도하여 편찬을 시도하였고, 이후 증삼이 세상을 떠나자 유약(有若), 민자건(閔子騫) 등이 『논어』 편찬을 이어 받았다. 그리고 전국시대(戰國時代) 맹자(孟子) 시기 또는 맹자 사후에 누군가 내용을 첨가하고 보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것은 당시 영향력이 있던 관중(管仲)에 대한 평가가 상론과 하론에서 상반된다는 점에서 추측할 수 있다. 즉 관중에 대한 노(魯)나라와 제(齊)나라의 상반된 평가가 통합되었다는 점에서 양쪽의 입장을 모두 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논어』는 삼국시대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3~4세기 경 백제 목간에 5편인 「공야장(公冶長)」편의 주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근거이다. 유교 사회를 국가의 지향으로 삼았던 조선 때는 모든 사회정치적 활동의 근간으로 작용하였다.
서지 사항
10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존하는 책의 크기는 세로 34.2cm, 가로 22.4cm이고, 지질은 한지이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논어』는 전한(前漢) 시대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기에는 『논어』라는 명칭 대신 ‘전(傳)’, ‘기(記)’, ‘논(論)’, ‘어(語)’ 등의 이름으로 불렸으며,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판본이 전해진다. 『논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전한(前漢)의 6대 경제(景帝) 기간이라고 하며, 후한(後漢) 시대 때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논어』는 상론 10편과 하론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론과 하론의 문체와 호칭 및 술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상론은 문장이 간략하고 글자 수가 짧은 대신에 하론은 문장이 길고 글자 수가 많다. 또한 상론의 마지막 10편 「향당(鄕黨)」은 공자의 일상생활을 담는 결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하면 인(仁)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세부 덕목으로는 지(知 : 지혜)와 인(仁 : 어짊)과 용(勇 : 용기)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인’은 협의의 ‘인’이며, 공자가 내세운 모든 덕목을 총칭하는 개념이 광의의 ‘인’이다.
공자는 법이나 제도보다 사람을 중요시 하였다. 그는 사람을 통해 도덕의 이상 사회를 이루려고 하였으므로, ‘어짊’을 실천하는 지도자로 군자(君子)를 내세웠다. ‘군주의 자제’라는 고귀한 신분을 뜻하던 ‘군자’는 공자에 의해 이상적 인격의 소유자로 개념화되었다. 군자는 도(道)를 추구하고, 도에 입각하고, 도가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존재이다. 이 위대한 정치가는 예(禮)로 자신을 절제하고, 악(樂 : 음악)으로 조화를 추구하며, 문(文 : 문예)을 열심히 공부[學]하여 훌륭한 군자로 거듭나고, 정치(政治)를 통해 민생(民生)을 안정시키고, 도덕의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공자는 덕(德)과 의(義)가 사회의 중심 가치가 되는 자신의 이상 사회를 끝내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삶의 역정 속에서도 도덕 사회의 구현이라는 처음의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는데, 이 꿈이 녹아 있는 책이 『논어』이다.
『논어』에서 군자는 성인처럼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도 아닌 존재이다. 성인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도덕성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이는 군자란 높은 정치적 지위, 경제적인 부유, 지식과 나이의 많음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따라서 군자는 고유(固有)한 도덕성을 자기정체성의 근거로 삼을 필요가 있으며, 군자의 정치의식은 이러한 도덕성을 함유하는 자기정체성의 확립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군자는 이러한 자기정체성의 확보에서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이것을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확산시킬 의무도 가진다. 곧 충만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군자는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풍부하게 전한다. 이것은 사회에 사랑을 전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군자관의 정치의식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로 환원한다기보다는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보편적인 사랑을 전한다는 측면이 더 강하다. 즉 『논어』 속 군자관의 논리에 따르면 본래 주어진 도덕성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확립하고, 이것을 자기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시켜야 비로소 평화로운 공동체 문화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금정연, 「폭설과 논어」, 『인물과사상』 142, 인물과 사상사, 2010.
- 김기연, 「논어(論語)와 21세기 건설(建設)」, 『대한토목학회지』 60-7, 대한토목학회, 2012.
- 김수동, 「고문헌 『논어』에서의 ‘배려 실천’ 고찰」, 『인격교육』 5-2, 한국인격교육학회, 2011.
- 이재권, 「왕필의 『논어』 해석」, 『동서철학연구』 63, 한국동서철학회, 2012.
- 전재동, 「정암(正菴) 이현익(李顯益)의 『논어(論語)』 해석 연구 - 자료 소개와 「논어설(論語說)」 분석을 중심으로」, 『국학연구』 18, 연세대국학연구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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