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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17 기준 최신판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엮은 괴기소설집(怪奇小說集).

개설

『전등신화(剪燈新話)』는 중국 명대(明代) 홍무(洪武) 연간에 구우(瞿佑)가 엮은 괴기소설집(怪奇小說集). 구우의 자는 종길(奈吉)이고, 전당(錢塘) 사람이다. 처음에는 40권으로 『전등록(剪燈錄)』이라는 이름이었으나, 모두 산망(散亡)되고 말았다. 그 뒤 포강윤(蒲江尹)호자앙(胡子昻)이 자기의 서기(書記)인 전이화(田以和)로부터 『전등신화(剪燈新話)』 사본(寫本) 4권을 얻어, 구우에게 부탁하여, 영락(永樂) 19년(1421)에 교정(校定)한 것으로 지금 전하여지는 것이 모두 4권이다. 각 권마다 5편씩으로 나뉘고 부록 1권이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도 『전등야화(剪燈夜話)』라는 책이 있었다.

편찬/발간 경위

간보(刊本) 중 영락전본(永樂傳本)은 그 판각(板刻)이 고아(古雅)하고 위쪽에 그림이 들어 있다고 하나, 그 저본(底本)은 구우 자신이 그 가운데 탈락이 많다고 지적한, 종전의 방각본(坊刻本)에 지나지 않으므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그 다음으로 구우가 교정(校定)한 것은 그의 조카 구섬(瞿暹)에 의하여 항주(杭州)에서 개판(開版)되었으나, 그 연대는 확실치 않다. 정통(正統) 7년(1442)에 이르러 이 책의 유전(流傳)이 금지되어, 오랫동안 끊겼으나, 만력(萬曆) 연간에 이르러 다시 간행되었고, 또 『만금정림(萬錦惰林)』ㆍ『연거필기(燕居筆記)』 등에 그 중 몇 편이 초록(抄錄)되었다. 이어 건륭(建隆) 8년(1743)에 간행된 방각본은 영락본에 근거한 것으로 잘 통하지 않는 부분은 이를 함부로 산개(刪改)하였고, 심지어는 『전등신화』에 있는 시를 잘못하여 『전등여화(剪燈餘話)』에 집어넣기도 하였다.

또 청조 중기에 나온 방각본 『사등집(四燈集)』은 『전등신화』 외에 『전등여화』ㆍ『추등총화(秋燈叢話)』ㆍ『멱등인화(覓燈因話)』를 합친 것이다. 『전등신화』는 누판(鏤版)된 지 얼마 안 되어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번각(翻刻) 되었는데, 명종(明奈) 때에 창주(滄洲) 윤춘년(尹春年)이 구우의 교정본에 따라 정정한 것을 임기가 집석(集釋)한 구해(句解) 2권의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정(嘉靖) 26년(1547) 임기가 송기(宋冀)의 위촉에 따라 지어, 28년 (1549)에 간행한 것이고, 또 하나는 윤춘년의 교정을 거쳐 38년(1559)에 윤계연(尹繼延)이 간행한 것이다. 그 뒤 이들은 일본에 전해져, 그곳에서 번각되기도 하였다.

서지 사항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8.5cm 가로 18.6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저자인 구우(瞿佑)는 예로부터 학문을 중시한 집안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예(才藝)로 세간에 문명(文名)을 떨쳤다. 그가 쓴 『귀전시화(歸田詩話)』의 '자서(自序)'에는, 14세 때의 어느 날 부친의 친우 장언복(張彦復)이 찾아왔다가, 그의 시재(詩才)를 높이 사 계화(桂花) 한 가지를 그린 다음 찬사의 시를 지어 넣어 주었으며, 이에 부친이 매우 기뻐하며, 특별히 집안 한 곳을 정해 전계당(傳桂堂)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또 당대의 유명한 문인 양유정(楊維楨)이 만년에 송강(松江)에 머물러, 혹 항주를 지나칠 때 구우의 숙부 구사형(瞿士衡)을 자주 방문하였다. 그들은 전계당에서 연일 술을 마시며, 시 짓기를 즐겼는데, 양유정이 어린 구우의 시재에 놀라, “이 아이는 그대 가문의 천리마이다.”라며 찬탄했고, 시인 능운한(凌雲翰)도 구우가 하루만에 자신의 2백수 매사(梅詞)ㆍ유사(柳詞)를 모두 화답하자, 나의 ‘어린 벗’ 라고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전등신화』는 “등불의 심지를 잘라서, 불을 밝혀가며 읽는 재미나고, 새로운 이야기”란 뜻이다. 당시 문예가 다시 고문에 복귀코자 하는 시대정신을 따라, 명나라 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유행하던 백화체의 소설을 배척하고, 당전기소설(唐傳奇小說)을 모방하여, 신괴(神怪)한 내용을 섞어서 문어체로 기술하고 있다.

내용은 대부분 진(晋)ㆍ당(唐)의 필기 소설(筆記小說)과 같은 것으로 1권에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ㆍ『삼산복지지(三山福地志)』ㆍ『화정봉고인기(華亭逢故人記)』ㆍ『금봉채기』ㆍ『연방루기(聯芳樓記)』, 2권에 『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ㆍ『천태방은록(天台訪隱錄)』ㆍ『등목취유취경원기(藤穆醉遊聚景園記)』ㆍ『모란등기(牡丹燈記)』ㆍ『위당기우기(渭唐奇遇記)』, 3권에 『부귀발적사지(富貴發跡司志)』ㆍ『영주야묘기(永州野廟記)』ㆍ『신양동기(申陽洞記)』ㆍ『애경전(愛卿傳)』ㆍ『취취전(翠翠傳)』, 4권에 『용당영회록(龍堂靈會錄)』ㆍ『태허사법전(太虛司法傳)』ㆍ『수문사인전(修文舍人傳)』ㆍ『감호야범기(鑑湖液泛記)』ㆍ『녹의인전(綠衣人傳)』의 20편이다. 부록 『추향정기(秋香亭記)』에는 엮은이 자신의 경력을 서술하고 있는데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전등신화』의 내용을 모방하여, 명(明)의 이창기(李昌祺)가 영락 18년(1420) 『전등여화(剪燈餘話)』를 내었으며, 또 명만력 중 소경첨(邵景詹)이 엮은 『멱등인화(覓燈因話)』 2권이 있다. 이밖에 『전등신화』에서 취재한 희곡 작품으로 원본(院本) 『난혜연방루기(蘭蕙聯芳樓記)』 외에 엽헌조(葉憲祖)가 『전등신화』의 『취취전(翠翠傳)』에 근거하여 본 『한의기(寒衣記)』, 청(淸) 원성(袁聲)이 역시 『취취전』에 근거하여 쓴 『영두서(領頭書)』가 있고, 명 주양준(周良俊)이 『전등신화』의 『녹의전(綠衣傳)』에 근거하여 쓴 『홍매기(紅海記)』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중국의 민간에서는 ‘삼언이박(三言二拍)’이라 불리는 명 말기 통속소설이나, 명대의 희곡에 영향을 주었고, 청초 포송령(蒲松齡)의 『요재지이(聊斎志異)』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조선에 전래되어,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神話』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순신(李舜臣)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도 이 책 속의 이야기와 관련된 구절이 있다. 『전등신화』는 일본에도 전해져 에도시대(江戸時代)의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어, 아사이 료이(浅井了意)의 『오토기보우코(伽婢子)』나 전등신화 속의 ‘모란정기(牡丹灯記)’를 번안한 산유테이 엔초(三遊亭圓朝)의 ‘모란정롱(牡丹灯籠)’이 대표로 꼽힌다.

전등신화는 중국에서는 사대부의 교양으로 맞지 않다고 여겨져, 금서로 지정된 적도 있었고, 청대(清代)에는 단편밖에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1917년에 동강(董康)은 일본에 남아 있던 게이초(慶長: 1596년 ~1615년) 연간의 간본을 토대로 번각하여 중국으로 역수입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상기숙, 「전등신화」, 『중국소설연구회보』 제58호, 한국중국소설학회, 2004.
  • 이강국, 「구우(瞿佑)의 『전등신화』 연구」,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최용철, 「『전등신화(剪燈新話)』 주석본과 『금오신화(金鰲新話)』 비평본의 전파와 회귀」, 『민족문화연구』 66권,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