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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15 기준 최신판




1250년대 고려 북부를 침입한 몽골 황족이자 장군.

개설

몽골 이름은 알려진 바가 없고, 산길대왕이라는 칭호만 확인된다. 1254년 쌍성(雙城)에 진을 치며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李安社, 목조[穆祖])에게 사람을 보내 몽골에 항복하도록 설득하였다. 그 후 1258년 산길대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침입하였다. 그러자 고려의 탁청(卓靑)과 조휘(趙暉) 등은 철령(鐵嶺) 이북의 땅을 몽골에 갖다 바쳤다. 몽골에서 화주(和州: 함경도 영흥의 옛 지명)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한 뒤 조휘를 총관(總管)으로 삼고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아 이곳을 통치하도록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에서 산길대왕이 확인되는데, 원(元)의 산길대왕이 와서 쌍성에 주둔하면서 철령 이북 지방을 취하려고 하여, 사람을 두 번이나 보내 목조에게 원에 항복하기를 청하자 목조가 마지못해 항복하였다는 것이다[『태조실록』 총서 1번째 기사].

가계

대왕이란 칭호로 볼 때 몽골황족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나 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알 수 없다. 목조 집안의 딸과 혼인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