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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청 초기에 조선과의 교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아주후[ajuhū, 阿朱戶]의 한자 이름.

개설

아주후([阿朱戶], ajuhū)는 청 태종 홍타이지의 측근 신하로 조선과 몽골에 사절로 자주 왕래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1629년부터 1631년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수차례 왕래하면서 홍타이지의 의사를 전달하는 사절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활동 사항

아주후는 1627∼1628년 홍타이지가 몽골 차하르 부를 공격할 때 사절로 조선에 왕래하였고, 1628년 12월에는 종군하지 않은 몽골 코르친 세력의 투시예투에게 홍타이지의 질책이 담긴 서신을 전달하였다.

1629년 2월에는 만다르한([滿達爾漢], mandarhan)과 함께 홍타이지의 서신을 가지고 조선을 방문하여 인조를 접견하였고 호시(互市)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인조실록』 7년 2월 25일). 같은 해 8월에는 조선의 추신사(秋信使)박난영(朴蘭英)이 돌아오는 편에 조선 출신의 통사 박중남(朴仲男) 등과 함께 들어오기도 하였다. 이때 가도(椵島)의 명군 장수들이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인조실록』 7년 8월 9일).

1630년 5월 아주후는 박중남, 잉굴다이([英俄爾岱], inggūldai) 등과 함께 들어왔는데, 아주후는 박중남만을 대동하고 한성으로 올라와 다시 한 번 인조를 접견하였다(『인조실록』 8년 6월 7일). 아주후는 그해 10월에도 추신사로서 홍타이지가 자신이 왜 사촌형이자 후금의 또 다른 권력자인 아민(阿敏, amin)을 처벌하게 되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한 서신을 지참하고 조선을 방문하여 3번째로 인조를 접견하였다(『인조실록』 8년 10월 13일)(『인조실록』 8년 10월 28일). 아주후는 1631년 2월에는 춘신사(春信使)로서 조선을 방문하였다.

1631년 5월 홍타이지는 약 6,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가도를 공격하였는데, 결코 조선은 공격하거나 약탈하지 말 것과 조선에서 전함을 빌려 가도를 점령하라고 지시하였고, 아주후로 하여금 마푸타([馬福塔], mafuta)와 함께 조선에 가서 전함을 빌리는 연유를 설명하도록 하였다. 이해 6월 조선 조정은 평안병사유림(柳琳)을 통하여 10,000의 후금군이 침략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부원수정충신(鄭忠信)에게 중앙의 정예군을 배속시켜 평양으로 진주하고 동시에 황해도에 군사 동원령을 내리는 등의 대비를 하였다(『인조실록』 9년 6월 8일). 아주후는 박중남과 함께 안주에 들어와 군량을 청한 뒤, 평양으로 가서 홍타이지의 서신을 주고 돌아갔다. 이에 평안도관찰사민성휘(閔聖徽)는 전함은 지급할 수 없지만, 군량은 지급하겠다고 답하고 가도의 대안에 위치한 철산(鐵山)의 군량미 수백 석을 지급하였다. 아주후 등 후금군은 이달 25∼26일에 걸쳐 회군하여 돌아갔다(『인조실록』 9년 6월 25일).

참고문헌

  • 『만문노당(滿文老檔)』
  • 『청태종실록(淸太宗實錄)』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