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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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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공아라 |
한글표제 | 공아라 |
한자표제 | 空俄羅 |
동의어 | 에제이 홍고르(Ejei hongor), 에르헤 홍고르 에제이(Erke hongor ejei) |
관련어 | 릭단([林丹], Ligdan), 차하르([察哈爾], Chakhar), 후금(後金) |
분야 | 정치/외교/외교사안 |
유형 | 인물 |
집필자 | 체렝도르지 |
성별 | 남 |
생년/일 | 미상 |
몰년/일 | 1649년 |
본관 | 키야드 보르지기드씨(Соёмбо принтинг) |
가족관계(부,조,외조[모], 장인[처], 형제) | 부: 릭단 칸(Ligdan Khan), 모: 낭난태후, 조부: 망구스(Mangghus Mergen Taiji), 장인: 홍타이지(Hong Taiji), 동생: 아부나이(Abunai)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공아라(空俄羅)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인조실록』 13년 12월30일 |
몽골 최후의 대칸인 릭단 후툭투(Ligdan Khutugtu)의 태자.
개설
공아라(空俄羅)는 에제이 홍고르(Ejei hongor)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었다. 에르헤 홍고르 에제이(Erke hongor ejei)라고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 릭단([林丹], Ligdan) 칸은 몽골을 통일하는 데에 힘쓰고, 명나라와 연합하여 후금(後金)에 대항하였다. 그는 1630년대 초에 후금에게 협박을 당하여 서쪽으로 도망가 1634년에 청해(靑海)에서 사망하였다.
그러자 그의 황후 2명이 두 아들을 데리고 돌아가는 도중에 에제이 홍고르는 내몽골의 오르도스(Ordos)에 남았기 때문에 작은아들만 데리고 후금의 홍타이지에게 옥새를 바치며 항복하였다.
가계
부는 릭단 칸, 조부는 망구스였다. 장인은 후금의 홍타이지였다. 모는 낭난태후이고 동생은 아부나이였다.
활동 사항
1635년 에제이 홍고르가 후금 군대에게 항복하자 홍타이지는 그에게 딸을 시집보내 사위로 삼았으며 또한 친왕(親王)의 작위를 수여하였다. 그는 1649년 사망하였는데 자식은 없었다. 후금이 처음 일어날 때부터 조선은 대륙에서의 정황을 조심스럽게 살폈으며 후금의 주요 경쟁자 중 하나인 몽골 대칸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에는 “몽골 삽한(揷漢: 몽골의 부족 차하르)의 한(汗)과 태후가 태자 공아라 및 온 나라의 병사와 백성을 모두 이끌고 귀의해 왔다(『인조실록』 13년 12월30일)”는 기록이 있었다.
참고문헌
-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Манжийн үнэн магад хууль, Бит пресс, 2009. (Ts. 체렝도르지 역주, 『만주실록(滿州實錄)』, 비트 프레스, 2009.)
-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нар, Зарлигаар тогтоосон гадаад монгол, хотон аймгийн ван гүнгүүдийн илтгэл шастир, Согоо нуур, 2007. (Ts. 체렝도르지 등 역주, 『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傳)』, 소고오 누우르, 2007.)
- 『Болор толь』(『수정 거울』)
- Д. Гонгор, Халх товчоон, ШУА-ийн хэвлэх үйлдвэр, 1970. (D. 공고르,『할하의 약사』, 과학아카데미 출판부, 1970.)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