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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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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탈탈태사 |
한글표제 | 탈탈태사 |
한자표제 | 脫脫太師 |
동의어 | 톡토([脫脫], Toγto) |
관련어 | 바얀([伯顔], Bayan), 어사대부(御史大夫), 중서좌승상(中書左丞尙), 케식(kesig), 홍건군(紅巾軍) |
분야 | 정치/외교/외교사안 |
유형 | 인물 |
지역 | 몽골 |
집필자 | 체렝도르지 |
이칭(자,호,봉작호,시호) | 자: 대용(大用) |
성별 | 남 |
생년/일 | 1314 |
몰년/일 | 1355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탈탈태사(脫脫太師)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문종실록』 즉위년 8월 29일 |
원나라 말기의 정치인.
개설
탈탈(脫脫)은 몽골어 톡토(Toγto)를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톡토는 메르기드 씨(氏)로 어릴 때 백부(伯父) 바얀([伯顔], Bayan) 밑에서 성장하였다. 이후 황태자 소속의 케식(kesig, [겁설관])이 되었고, 1335년 바얀이 권신 텡기스([唐其勢], Tenggis)를 잡아 죽일 때 그 잔당들을 습격하여 패퇴시켰다. 1338년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올랐다.
내용 및 특징
1340년 실권자인 바얀을 축출하였다. 1341년 중서좌승상(中書左丞相)에 올라 바얀의 정책을 모두 개혁하고 과거를 통하여 인재를 뽑는 제도를 회복하였다. 1344년 병 때문에 사임하였지만 1349년 쾌차하여 중서좌승상에 임명되었다. 1352년 군사를 이끌고 서주(徐州)의 홍건군(紅巾軍)을 진압하였다. 1354년 장사성(張士誠)을 고우(高郵)에서 포위하였지만 경쟁자의 참소로 탄핵을 받고 삭직(削職)되었다. 얼마 뒤 대리(大理)로 유배 가는 도중에 독살되었다.
톡토는 원(元) 말기 유명한 정치인으로 고려에도 잘 알려졌으며 조선시대에도 쿠빌라이의 신하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문종실록』에는 “원 세조(世祖)는 천하를 통일하였으므로 세상에서 모두 성인(聖人)으로 일컫게 되고, 또 그 신하에 탈탈태사(脫脫太師) 같은 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문종실록』 즉위년 8월 29일).
가계
부는 마자르타이([馬札兒臺], Majartai), 백부는 바얀이다.
학문과 사상
원나라 때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1343년 국사원 총재관(總裁官)이 되어 요(遼)·금(金)·송(宋) 나라의 역사를 편찬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저술 및 작품
『요사(遼史)』·『금사(金史)』·『송사(宋史)』
참고문헌
- 『원사(元史)』
-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0.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
- 첵메드 체렝도르지, 「14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북원과 고려의 관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