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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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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답리파 |
한글표제 | 답리파 |
한자표제 | 答里巴 |
동의어 | 델벡(Delbeg) |
관련어 | 마하무([馬哈木], Mahamu), 아룩타이([阿魯台], Aruγtai), 몽골[蒙古] |
분야 | 정치/외교/외교사안 |
유형 | 인물 |
지역 | 몽골 |
집필자 | 체렝도르지 |
성별 | 남 |
생년/일 | 1395년 |
몰년/일 | 1415년 |
본관 | 키야드 보르지긴씨 |
가족관계(부,조,외조[모], 장인[처], 형제) | 부: 본야시리([本雅失里], Bunyasiri), 조부: 엘벡(Elbeg)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답리파(答里巴)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4년 9월 19일 |
1410년대 몽골의 대칸.
개설
답리파(答里巴)는 몽골어 델벡(Delbeg)을 한자로 음차 표기한 것이다. 1412년에 오이라트(Oyirad)의 수령마하무([馬哈木], Mahamu)가 본야시리([本雅失里], Bunyasiri) 칸을 시해하자, 오이라트는 1412년경에 델벡을 대칸으로 옹립하였다. 마하무는 태사(太師)로 자임하였다. 그러나 1415년에 마하무는 그 경쟁자 아룩타이([阿魯台], Aruγtai)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달아났으며 이때쯤 델벡도 죽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명의 영락제가 몽골을 정벌한 뒤 그 내용을 알리면서 조선에 전한 조서에 답리파가 등장하였다. 즉, “추격하여 토라하(土剌河)에 이르니, 적수(賊首) 답리파(答里巴)·마합목(馬哈木)·대평(大平)·파독발라(把禿孛羅)가 그 지혜와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지경을 휩쓸고 왔는데, 병인(兵刃)을 겨우 맞대자 마치 마른 나무가 꺾어지고 썩은 나무가 쓰러지듯이 하였다(『태종실록』 14년 9월 19일).”라고 하였다.
가계
부는 본야시리 칸이었다. 혹은 쿠빌라이 칸의 동생인 아릭부흐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참고문헌
-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 Эрдэнэ тунамал нэрт шастир(『에르데니 투누말이라는 역사』)
- Шар тууж (『대황사(大黃史)』
- Саган сэцэн, Эрдэнийн товч , 1961. (사강 세첸, 『몽골원류[蒙古源流]』, 1961.)
-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