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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왕자의 난에서 회안대군 이방간을 숙청한 공로로 태종대에 책봉된 공신.

내용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회안대군 이방간과 정안대군 이방원은 후계 왕권을 놓고 2년 가까이 대결하였다. 1400년(정종 2) 1월 28일, 회안대군 이방간은 아들 이맹종을 위시하여 이성기 등과 함께 수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정안대군 이방원의 집을 향하여 기습 출동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안대군이 승리하였고 회안대군은 생포되었다.

정안대군은 제2차 왕자의 난에서 승리한 다음 날 정종의 왕세자로 결정되었고 약 10개월 후에 조선의 제3대왕 태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로부터 2개월 후에 좌명공신 46명이 책봉되었다. 1등공신은 이저·이거이·하륜 등 9명이었으며 2등공신은 이내·이화 등 3명, 3등공신은 성석린·이숙·이지란 등 12명, 4등공신은 조박·조온·권근 등 22명이었다. 46명의 좌명공신 중에서 이거이·이무·이숙번·민무구·민무질 등 최측근 세력들은 태종의 외척 제거 및 왕권 강화의 과정에서 숙청되어 최종적으로는 40명만이 좌명공신으로 남았다.

용례

上如馬巖壇下 與佐命功臣 歃血同盟 用祭服(『태종실록』 1년 2월 12일)

참고문헌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국조공신록(國朝功臣錄)』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
  • 정두희, 『조선초기 정치지배세력연구』, 일조각, 1983.
  • 김윤주, 「조선 초 공신책봉과 개국·정사·좌명공신의 정치적 동향」, 『한국사학보』 35, 2009.
  • 박천식, 「조선 개국공신에 대한 고찰-책봉 과정과 대우를 중심으로」, 『전북사학』 1, 1977.
  • 한영우, 「조선 개국공신의 출신에 대한 연구」, 『조선전기사회경제연구』, 을유문화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