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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3 기준 최신판



과거에서 시관들이 함께 모여 답안을 검토하는 채점 방식.

개설

시관(試官)들이 답안을 나누어 채점하고 가려 뽑은 답안을 함께 모여 다시 검토하는 것을 말하였다. 나누어 검토하는 것은 분고(分考), 모여서 함께 검토하는 것은 합고(合考)라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과거 중 왕이 친림(親臨)하는 정시(庭試)·알성시(謁聖試)·춘당대시(春塘臺試) 등은 오전에 시험을 보고 오후에 채점을 마친 후 저녁에 방을 내는 것이 관례였다. 이에 따라 빠른 시간 내에 채점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시관의 수를 늘리는 한편 분고와 합고 두 단계로 나누어 채점을 진행하였다. 『속대전』에는 즉일방방(卽日放榜)하는 시험의 시관은 독권관(讀券官) 10명, 대독관(對讀官) 20명으로 총 30명이었다.

시관들은 먼저 독권관 한 명과 대독관 두 명이 짝을 이루고 답안을 나누어 검토하였다. 이를 ‘분고(分考)’라고 하였다. 이어 시관들이 분고 과정에서 선별한 답안을 시관들이 함께 모여 다시 검토한 후 합격 답안을 뽑았다. 이를 ‘합고(合考)’라고 하였다(『숙종실록』 38년 5월 25일). 숙종대 기록에 따르면 합고 때는 명관과 대제학을 중심으로 일부 시관만 참여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고 한다.

분고와 합고로 단계를 나누어 채점을 시행하면 짧은 시간에 채점을 마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분고를 할 때 시관에 따라 채점 기준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속대전(續大典)』
  • 이성무, 『한국의 과거제도』, 집문당, 2000.
  • 조좌호, 『한국과거제도사연구』, 범우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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