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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3 기준 최신판



왕비를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함.

개설

조선시대에는 살아서 왕비로 있다가 폐해진 폐비들과, 죽어서 폐비가 된 왕비들이 있다. 왕비들이 폐비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정쟁(政爭) 가운데 왕과의 불화로 폐해진 경우, 남편과 대비 등 가족 간의 불화 때문에 폐해진 경우, 왕비의 아버지가 국가로부터 죄를 받은 것으로 인해 폐하여진 경우, 반정으로 남편인 왕이 폐위되어 함께 폐하여진 경우, 시아버지인 대원군과의 불화 때문에 죽어서 폐해진 경우 등 다양하였다. 왕비들이 어떠한 이유로 폐비되었든지 간에 대부분 정쟁의 희생자들이었다.

내용 및 특징

먼저 남편이나 대비 등 가족 간의 불화를 핑계로 폐하여진 경우로는 성종의 계비 윤씨가 있다. 성종과 대비들이 윤씨를 폐비시킨 이유는 매우 많았으나 핵심은 투기가 심하다는 이유였다. 윤씨는 폐비당한 것에서 나아가 죽음까지 당하였다[『성종실록』 13년 8월 16일]. 아들 연산군이 즉위한 후 제헌왕후로 복위되었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다시 폐위되었다.

둘째, 정쟁 가운데 왕과의 불화를 핑계로 폐해진 경우로는 인현왕후 민씨와 희빈장씨를 들 수 있다. 인현왕후 민씨는 1681년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그러나 숙종은 후궁 희빈장씨를 총애하여 민씨를 멀리하고, 장씨가 왕자 이윤(李昀)을 낳자 그를 세자로 책봉하려 하였다. 이 문제로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남인(南人)이 득세를 하고 서인(西人)이 밀려나면서 민씨도 폐비가 되어 궁중에서 쫓겨났다[『숙종실록』 15년 5월 2일]. 그리고 민씨의 뒤를 이어 희빈장씨가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1694년 다시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서인이 득세를 하고 남인들이 실세하자 왕비 장씨가 폐비가 되어 희빈으로 강등되고, 폐비 민씨가 다시 왕후로 복위되었다(『숙종실록』 20년 6월 1일).

죽어서 폐비가 된 경우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를 들 수 있다. 권씨는 1457년(세조 3) 단종 복위 운동과 관련하여 아버지 권전이 추폐(追廢)되어 서민이 되고,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자 왕후에서 폐위되었다(『세조실록』 3년 6월 26일). 1513년(중종 8) 신주가 다시 종묘 문종실(文宗室)에 봉안되었고, 1699년(숙종 25) 신원되었다.

넷째, 친정아버지가 국가로부터 죄를 받은 것으로 인해 폐하여진 왕비로는 중종의 초비 단경왕후 신씨가 있다. 단경왕후는 신수근의 딸로서 성종의 아들 진성대군과 결혼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인해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될 수 있었으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오히려 연산군의 편에 서다 반정공신들에게 죽음을 당하여 역적의 딸이 되었다. 따라서 죽을 때까지 사가(私家)에서 살게 되었다[『중종실록』 1년 9월 9일]. 사람들은 그를 폐비 신씨라 하지만 왕비에 책봉된 적은 없었다. 영조 때에 이르러 단경왕후라는 시호와 온릉이라는 능호를 받고 왕비로 복위되었다.

다섯째, 반정으로 왕이 왕위를 잃어 왕과 함께 폐하여진 왕비로 단종비, 연산군비, 광해군비 3명이 있다. 단종비 송씨는 남편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폐비가 되었다. 그러나 단종이 1681년(숙종 7)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복위되어 단종으로 추증되자 정순왕후로 복위되었다. 연산군의 비는 남편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자 폐비가 되었고, 광해군의 비도 인조반정으로 남편 광해군이 왕위에서 쫓겨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폐비가 되었다. 연산군 비와 광해군 비는 남편인 왕과 아울러 신원이 회복되지 못하였다.

여섯째,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불화로 인해 폐해진 경우로 명성왕후 민씨가 있다. 명성왕후 민씨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후 대원군 정권이 복귀되면서 폐비가 되었다[『고종실록』 32년 8월 22일]. 그러나 두 달 만에 복위되었다. 폐비가 된 배경에는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불화가 크게 작용하였다.

참고문헌

  • 변원림, 『조선의 왕후』, 일지사, 2006.
  • 이성무, 『조선왕조사 1』, 동방미디어,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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